개인적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386세대'로서의 정체성을 그다지 가지고 있지 않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긴 했지만, 이른바 '386세대'들이 자신들만의 것인 양 내세우는 민주화운동을 했다기보다는 노동현장에 주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인지 '386'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386'임을 내세워 자신의 입신양명에 이용하려는 작태를 혐오한다.

386세대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70년대의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기반으로 질적 비약을 위한 물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80년대에 들어서며 중화학공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하자,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런 필요는 대학 정원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온다.

바로 이 때에 대학에 다닌 이들이 386세대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진출할 사회가 권위주의적이고 비합리적임을 깨닫고 이를 바꾸어내기 위해 저항했다. 386세대는 사회진출을 거치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한 것이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이로든 386세대의 사회진출은 한국 사회의 합리화에 큰 몫을 했다. 요즘 잘 나가고 있는 영화, 벤쳐기업 같은 산업과 문화는 하나같이 386세대들이 이루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노동조합의 정책 책임자로 일하고 있으니, 386세대들이 가지는 전문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386세대의 얼굴마담들은 전문성이나 합리성과는 아무 인연이 없다. 졸업 후, 공천이나 얻을까 하며 보수정당 주변을 기웃거리던 그들에게 '386'은 자신의 출세를 위한 보증수표일 뿐이었다. 즉, 그들은 우리 윗 세대가 기대하고 대학에서 교육받은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대학 다닐 때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보수정당의 가신이 되었을 뿐이다.

386에게 맡겨졌던 또 하나의 과제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전면적 개혁을 이루는 것이었고, 386세대는 스스로 그것을 민족·민중·민주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현재 기성정치권에 진출해 있는 386세대들은 자신들이 치열하게 운동을 하던 시기에 추구했던 가치를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보수정당에서는 민족·민중·민주라는 삼민의 가치 중 어느 것 하나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기성 보수정당들이 얼마만큼 비민주적인지, 보스 중심의 독재를 계속하고 있는 지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미국에는 벼농사 농민을 팔아먹고, 일본에는 꽁치 어민을 팔아먹는 보수정당,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정리해고시키는 보수정당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반민족적이고 반민중적인 세력이다.

한편 임종석씨, 허인회씨 같은 사람들은 근본적인 시각의 한계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결코 민중 속에 직접 몸을 담아 실천을 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기성 보수정당에 들어가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것이 민중의 권익이 아니라, 김대중 같은 야당 인사가 제도권 내에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떤 조직에 들어가든 그 조직을 바꾸어내는 것은 힘의 문제이다. 과거에도 이부영씨, 이창복씨, 김근태씨 등 재야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보수 정치권에 많이 들어갔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는 기성 정당의 기반이 민중이 아니라, 재벌과 우익세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재야인사들과 386세대들의 기성 정치권 진출은 보수정당의 거대한 뿌리를 한 두 사람 또는 작은 그룹의 노력으로는 결코 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역사였다.

무릇 정치는, 계급 계층 등의 사회집단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세대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다. '386'은 하나의 세대일 뿐이며, 그 안에는 다양한 계급과 계층, 이념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이제, 386에게 남은 마지막 과제는 스스로를 해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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