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무소의 꽃' 근로감독관들…"3D업종 자조에도 사명감과 보람으로 일해"

 

 


"따르릉∼ 따르릉∼" "예, 근로감독과입니다."

여기저기 쉴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좁은 사무실에 빽빽히 들어차 상담을 벌이고 있는 근로감독관과 민원인들, 사무실 옆 대기실에서 담배연기 한 줄씩을 뿜어내며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는 민원인들…. 지난 6일 토요일 오전, 영등포구 당산동 소재 서울남부노동사무소(소장 정재홍) 근로감독과 사무실은 정신이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 서울남부노동사무소에 주목한 이유…관할지역에 항공사 등 주요사업장 몰려있어

노동부는 전국 각지에 모두 서울, 부산, 경인, 대구, 광주, 대전 등 6개 노동청과 그 산하에 46개의 지방노동사무소를 두고 있다. 그 아래 노동쟁의,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등 노동현안의 중재자로, 조정자로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각 '지방노동사무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근로감독과'가 있다.

올해 서울남부노동사무소는 유난히도 정신없이 일이 많았다. 대한항공조종사, 아시아나항공노조를 비롯해, 레미콘노조, 한국시그네틱스, CBS 등 올해 상반기동안 최고의 이슈가 됐던 사업장이 줄줄이 관할지역에 있기 때문. 관할지역이 영등포(여의도 포함), 강서, 양천 등 3개구가 포함되며 여의도의 경우는 국회, 각 정당, 금융권, 금감위, 방송국 등이 몰려 있어 각종 노동관련 시위가 끊임없이 벌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도 여의도에서 각종 주요 시위가 벌어졌던 것은 물론, 레미콘노조의 경우 여의도광장에서 25일간 노숙농성을 벌이던 중 공권력 투입으로 당산철교 아래로 쫓겨나기까지 했다. 모두 남부노동사무소의 관할지역이다.

■ '희비' 교차…대한항공·한국시그네틱스, 그리고 택시업체 '진정실업'

남부노동사무소 근로감독관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사업장은 뭐니뭐니해도 대한항공과 한국시그네틱스라는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대한항공의 경우 파업이 터질 당시 남부노동사무소도 전담팀까지 꾸려 현장도 찾아다니고, 밤샘을 해가며 교섭장을 지키기도 했다. 또한 한국시그네틱스는 공장이전 문제로 노사가 첨예한 대립을 벌일 때도 10여차례 교섭을 주선해가며 문제해결에 전력을 기울였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파업이 끝난 후 이성재 위원장 등 4명이 구속에 10명 불구속 기소, 파면이 8명에 달했다. 또한 한국시그네틱스는 끝내 협상에 실패, 회사는 염창동 공장은 폐업신고를 하고 공장을 파주·안산으로 모두 이전한데 이어, 현재 농성 중인 조합원 134명을 전원 징계위에 회부, 지난 5일 29명의 해고를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관내에는 꽤나 오랫동안 노사간 갈등을 겪어왔던 '진정실업'이란 택시사업장이 하나 있다. 노사간 골깊은 불신으로 99년에는 국정감사 증인으로도 채택될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는 남부노동사무소가 중재를 한지 6시간만에 타결을 짓기도. 이 때 노사는 서로 악수를 한 후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감독관들에게 공동으로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알고 보면 불신의 원인은 그렇게 큰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 실마리를 푸는데 작은 도움을 주었을 뿐입니다." 박진규 근로감독과장(상자안 인터뷰 참조)의 말이다.

■ 남부노동사무소의 근로감독관들이 사는 법

흔히들 근로감독관을 '3D업종' 중 하나라고 근로감독관들은 자조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사명감과 보람 없이는 절대로 일할 수 없는 직업이란 뜻이다. 근로감독관의 업무는 크게 각종 민원업무 처리, 관내 사업장 관리감독, 시위·집회 동향파악 등은 기본이고, 관내에서 벌어지는 노동부의 각종 행사를 챙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특히 요새는 '사이버 민원'이 시행되면서 업무가 폭증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처리하는 감독관의 수는 그대로라는 것에 있다. 남부노동사무소의 경우 현재 민원업무가 784건이 진행 중으로 이를 모두 18명의 감독관이 담당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86건에 이르고 평균 44건에 이르고 있다. 임단협 타결률을 보면 전국평균이 71.5%인데 반해 관할지역은 58.7%에 머물고 있어 그만큼 사정이 어려운 편에 속한다.

한 사건의 처리기간이 25일(일요일 제외)을 넘어서는 안되는 데, 출석을 요구하면 주로 사업주는 빠지기 일쑤라고 한다. 게다가 인터넷을 통한 민원은 정해진 양식이 없어 어떤 이는 임금체불 건을 10장분량의 사연을 담아 보내기도 해서 감독관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남부노동사무소의 감독관들은 스스로 실력을 갈고 닦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기도 하다. 노동법 개정사, 임금채권보장법 등 감독관마다 노동관련 관련 주제를 맡아 매주 화요일마다 발표를 하도록 하고 있다. 한 근로감독관은 "벌써 자료가 꽤 쌓여 감독관 스스로의 공부도 되고, 실제 업무처리를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꽤나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절대적인 시간 부족, 늦은 퇴근, 잦은 밤샘근무, 끊임없는 전화에 민원인들의 멱살잡이, 감사실로 들어오는 투서…. 아수라장 같은 풍경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장의 많은 근로감독관들은 이런 풍경들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한 아주머니께서 임금체불을 해결해줬다며 '더덕'을 싸갖고 오셨더라구요. 사양을 하는데도 성의라며 놓고 가시는데,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근로감독관이요, 노사간의 신뢰를 못받을 때는 비애를 느낄 때도 많지만, 열심히 할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지난 99년 '올해의 근로감독관상'을 받은 베테랑 김학노 근로감독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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