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 노동계의 '반미시위'가 부쩍 늘고 있다.

예년 같으면 주로 통일운동 단체나 한총련 등이 '손님'으로 초대한 자리에서 임원급 대표자가 연대사를 하는 정도였거나, 아니면 개별적으로 참여했을 법한 반미 집회와 시위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많고, 때론 독자적인 반미집회를 갖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 15일 지하철 1호선 용산역에서 출정식으로 갖고, 미8군 사령부 앞에서 치러진 '신공안탄압 분쇄·매향리 폭격장 폐쇄·SOFA전면개정·양민학살 진상규명 범국민대회'에는 단병호 위원장 등 민주노총 임원들과 롯데호텔노조와 사회보험노조를 중심으로 한 조합원 1000여명이 참여했다.

파업 중인 사업장 노조원들이 '반미 집회'에 참여한 것도 그렇지만, 전체 참가자의 반수 이상을 노동자들이 차지했다는 사실도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런 이날 집회에선 당초 경찰에 신고된 집회 장소인 미군기지 정문 앞을 경찰이 인접 차도에서부터 막아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루전인 14일 정오 같은 장소에서 한국노총이 올해 들어 두 번째 SOFA개정 촉구집회를 가진데 이어 2시간여 뒤엔 장소를 미대사관 앞으로 옮겨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 한국노총의 기습시위는 조합원 70여명으로 꾸려진 일명 'SOFA전면개정 및 독극물 방류 미국사죄 요구 노동자선봉대'가 주도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국노총의 '반미 집회'는 올해 처음으로 시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달 17일엔 매향리 미군사격장 오폭 사건에 반발, 현지에서 SOFA 개정 국민행동이 연 집회에 민주노총 임원과 조합원 수백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노동계의 잇따른 반미 시위와 집회는, 우선 지난해말 6.25당시 미군의 노근리 양민 학살 사실이 밝혀진 뒤부터 꼬릴 물고 이어지는 안하무인격인 주한미군의 행태가 집중적으로 사회적 지탄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것과 연관돼 있다. 매향리 사격장 오폭 사건과 이를 계기로 확산되고 있는 SOFA 개정 여론, 여기에다 엊그제 한 환경단체가 폭로한 미8군의 독극물 무단방류 건 등은 노동자들 뿐 아니라 일반 국민의 '반미 감정'을 자극하고 비난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14일 독극물 무단방류 사건과 관련, "책임자 구속 처벌, 미국의 국가적 사과와 배상, SOFA전면 개정 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철수투쟁에 돌입하겠다"고까지 밝혔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노동계의 이런 움직임은, 몇 해 전부터 사회개혁투쟁을 통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지향해 온 것의 연장선에서, 분단모순의 응집체라 할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보다 실천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사표시라고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15일 미8군기지 앞 집회 대회사에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언급한 다음의 대목은 시사하는 게 많다. 단 위원장은 "우리는 이땅에서 분단이라는 민족문제와 자본에 의해 노동자가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계급문제가 중첩된 모순구조에서 살아왔다"고 전제하고, "그동안 생존권 문제가 워낙 절박했기 때문에 민족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지만, 분단이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영원한 임금노예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만큼 앞으로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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