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48개국 1,500만명이 참여하고 있는 UNI(Union Network International). 처음 국제상업사무전문노련(FIET), 국제정보통신노련(CI), 국제언론노련(MEI), 국제디자인노련(IGF) 등 4개의 국제노동단체가 2000년 1월 통합한 UNI가 첫 통합 세계총회를 개최했다.

한국에서는 한국노총의 금융노조, 체신노조, 정보통신노련과 민주노총의 공공연맹, 사무금융노조, 보건의료노조, 대학노조, 민간서비스연맹, KBS노조 등 9개 조직 38만명이 UNI-KLC라는 형태로 UNI에 참여하며 국내외적 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베를린 총회에도 KBS노조를 제외한 전조직에서 24명 이상이 참여하였다.

UNI는 자본의 세계화(Globalisation)에 대한 세계노동조합의 필연적, 전략적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경제 하부구조의 취약성과 일방적 구조조정, 민영화 정책으로 고용불안과 비정규직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노동조합 조직은 불안정해 지고 정부와 자본의 탄압까지 더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UNI참가는 국제연대를 통해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 독일 연방대통령이 말하는 친노동정책

독일의 베를린의 서부 외곽에 있는 ESTRL 컨벤션센터에서 9월3일∼10일까지 열린 UNI 세계총회. 피부색과 언어는 다르지만 노동운동을 함께 하는 만국의 동지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개막식에서 축하연설을 한 독일의 연방대통령 요하네스 라우(Johannes Rau)는 실업문제 해결책과 세계화에 대응하는 친노동정책을 발표했다.

또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침해받고 있는 노동기본권을 보호하도록 독일정부차원에서 ILO에 촉구하고, 실업문제 해결책으로 고용창출을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청년실업문제 해결과 중증 장애인 고용을 위해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노동정책을 들으면서 우리 한국대표들은 한국의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모습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느 정권보다도 심한 노동탄압과 구속된 노동자, 거리를 헤매는 실업자 등 한국상황과 독일의 친노동정책이 교차되어 서글픔이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다른 세계총회와 마찬가지로 UNI 세계총회 역시 형식적으로 흐르거나 학술적 세미나 형식에 머무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상황보고와 '미얀마와 콜롬비아의 평화와 민주화를 위하여'라는 보고에서는 달랐다.

* 세계총회를 '투쟁의 장'으로 바꾼 한국대표자들

우리는 한국상황보고 시간에 미리 준비해간 1700여개의 머리띠를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UNI는 한국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한다(UNI Call for Workers Rights in Korea)"라고 쓴 것이었다. 또 필립 제닝스(Philip Jennings) UNI사무총장은 한국의 구속된 노동형제를 생각하면서 모두 머리띠를 묶고 회의에 임하자고 제안했다.

참가자들이 모두 머리띠를 묶은 가운데, 연단에 한국대표들이 등단하자 한국의 투쟁 비디오가 멀티비젼을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있는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 공공연맹 양경규 위원장, 금융노조 이용득 위원장의 포효하는 연설과 경찰에 무자비하게 진압 당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나왔다.

은행합병 반대 파업으로 구속된 이용득 위원장의 즉각 석방을 촉구하는 금융노조 김기준 사무처장의 대표연설에 이어 공공연맹의 황민호 부위원장 역시 민주노총에 대한 한국정부와 자본의 탄압을 중단하고 단병호 위원장과 양경규 위원장을 비롯 구속된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했다. 황부위원장은 또 일방적 구조조정, 무분별한 민영화 정책에 대항해 투쟁하자고 UNI 세계총회 참가자들에게 호소했다.

세계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투쟁메세지를 전달하면서 '철의 노동자'를 부르는 율동하는 여성 동지들을 비롯한 한국참가자, 우리를 돕기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독일 유학생들 모두는 가슴 뜨거운 눈물과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

한국투쟁보고가 끝나자 모든 참가자들은 기립박수를 치면서 "이용득을 석방하라, 양경규를 석방하라(Free Lee, Free Yang)"를 연호 했고, 한국참가자들과 사진촬영하기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모든 참가자들은 즉석에서 UNI 본부에서 미리 마련한 편지봉투에 이용득, 양경규 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석방탄원서에도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들은 '한국의 주요 노조지도자들 조기석방' 등을 만장일치로 결의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이러한 문제를 방기하고 탄압을 계속한다면 UNI와 국제자유노련(ICFTU)은 이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전세계 역량을 모아 투쟁하겠다고 결의했다.

* 독일연방대통령과 도망간 베를린 주재 한국대사

9월7일 오후 1시, UNI 참가자들이 서명한 7미터 상당의 두루마리 석방서명지(Freedom Roll)와 채택된 결의문을 갖고 한국참가자들은 구트 반 하란(Kurt Van Haaran) UNI의장, 필립 제닝스 UNI사무총장을 비롯한 UNI 대표단과 버스를 타고 한국대사관 근처에 내려 현수막을 들고 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한국대사에게 결의문과 석방서명지(Freedom Roll)를 갖고 공식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사관에는 경찰차와 경찰이 배치돼 있었다. 한국대사관측의 요청한 것인데 하는 짓이 한국에서와 똑같았다. 대표 2명만 만나자는 한국대사관측의 입장에 따라 조셉 드 브라이언(Joseph De Bryun) 아태지역 대표와 UNI-KLC 집행위원장인 내가 대신해 대사관에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대사를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대사관에서 채용한 독일여성이 '대사는 급한 일로 나가서 자리에 없다'며 자신에게 설명하면 대사에게 보고하겠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UNI 세계총회에서 전달한 감사패를 정말 의미있는 선물로 여기고 행사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독일 대통령 모습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었다.

* 자본주의 심장, 세계무역센터는 무너지고 있었다

세계 노동자들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OECD가입, IMF 외환위기 조기졸업과 남북 정상회담, 노벨 평화상 수상 등 한국정부의 겉모습 뒤편에 심각한 노동운동 탄압과 대우자동차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 진압, 수많은 노조지도자 구속 상황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한국의 노동운동을 주목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 김대중 정권의 반노동자 정책에 맞서 처절하게 맞서 싸우는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한낱 헛되지 않다는 것, 자본주의가 있는 한 착취는 계속되고 착취가 있는 한 노동자는 투쟁할 수밖에 없으며 전세계 노동자들의 계급적 연대를 통해서만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분단이후 통일된 독일의 동-서가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고, 동독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하지 못해 알콜과 마약으로 병들어 가고 있다는 가슴아픈 얘기를 뒤로하고 우리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자본주의 심장 미국 맨하탄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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