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교통노조, 회사 인수 후 투명경영으로 재기 발걸음



매일 운송수입금 전액 공개…회사와 노조조합원들의 신뢰로 '친절'은 저절로

이해림(1,786주), 100주권×17, 10주권×8, 6주권×1.

이 것은 주식거래현장에서 오가는 주식거래계약서 내용이 아니다.

노동자가 기업을 인수해 경영하고 있는 진아교통(주)의 한 노동자가 받아든 봉투의 겉표지에 쓰여있는 내용이다.

지난 5월17일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사항인 체불상여금의 주식전환이 이뤄져 9월8일 그 증거물인 주식을 받아 든 노동자의 얼굴에서는 뿌듯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 노동자가 나서 '악덕사업주' 몰아내

진아교통(사장 이상도·노조위원장 나형태)은 서울시 노원구 월계3동에 위치한 버스회사로 노원구 월계동에서 강남의 도곡동까지 운행되는 38-2번을 비롯해 38, 228, 449, 411, 803번 등 총 6개의 노선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이 진아교통은 지난 5월17일 노동자들이 현금을 출자해 주식의 30%를 확보하고 소집한 주주총회에서 노조대표자를 사장으로 임명하고 노조가 직접 회사를 경영한다고 결정한 노동자자주기업이다.

"노동자자주기업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악덕사업주 몰아내기'에 있다. 처음에야 노동자가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상상도 못했지만, 그 '악덕사업주'를 몰아내기 위해 주주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기업인수까지 하게된 것이다."

진아교통은 1961년 설립된 이후 기사가 200여명에 이르고 관리직만 40여명에 이르는 등 한때 호황을 경험했으나, 지하철과 자가용보급의 확대로 발생한 버스업계의 불황바람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이 것이 가중돼 90년대 중반부터는 두 달여의 임금과 400%의 상여금이 체불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때도 노동자들은 회사의 어려움을 이해해 파업한번 하지 않고 경영개선을 기다렸으나 회사의 회생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주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했고, 버스사업조합 출신인 박아무개씨를 98년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박씨에게주식 10%를 무상으로 제공해줬다.

나형태 노조위원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엔 열심히 하는 듯 했다. 밤늦게까지 퇴근하지 않고 일하고 노선에도 직접 나가보는 등 이 전 사장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박씨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주들에게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주식을 회사로 반납하라고 설득해 자기명의로 바꾸고, 회사 땅을 매각하면서 5,000여만원에 이르는 돈을 횡령해 나위원장과 나눠쓰자고 회유하는 등 "아주 교활한 행위"들을 일삼았다고 전했다.

박씨의 전횡에 대해 나위원장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직접 사태해결에 나서야겠다고 맘먹게 된다. 이에 따라 노조사무장과 당시 노조기획부장이었던 현 이상도 사장이 주주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해 결국 주주총회를 통해 해임하기에 이른다.

그후 99년부터 노사공동경영(주주추천인과 노조추천인의 공동경영)을 해왔으나 여전히 체불임금과 상여금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자 올 3월 노동자들이 1억8,000만원 정도를 현금 출자해 30%정도의 주식을 사들였다. 결국 5월17일 주주총회를 열어 체불상여금을 100% 증자해 주식으로 전환하고 노조가 추천한 현 이상도 사장이 경영을 맡으면서 노동자가 주식의 65%를 보유한 노동자자주기업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 운송수입금 전액 공개와 토론회

진아교통이 노동자자주기업으로 전환하면서 한가지 크게 변화된 것이 있다.

매일매일 들어오는 운송수입금과 지출액을 전액 공개한다. 수입이 전액 공개되니 회사가 빼돌리고 자시고할 수 없다. 저절로 투명경영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한달에 한번 경영상태에 대한 토론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인수해 경영하는 회사 아닌가. 투명경영이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자 노동자자주기업 전환 후 발생할 수 있는 노동자 사장과 노조에 대한 의구심도 없앨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수입금도 자기가 직접 계산해 입금한다."

그날의 수입금 전액이 공개되고 지출액 또한 모두 공개되면서 진아교통 노동자들의 근무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노력하고, 더 오랜 시간까지 운행하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난 7월에 장마철이라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밤 10시30분께 지하철이 멈춘 적이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는 자기 업무시간이 끝난 조합원 11명이 더 나가 2시께 들어온 적이 있었다. 옛날이었으면 퇴근 후에 자발적으로 운행을 나간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런 노동자의 자발적인 노력이 밑바탕이 돼 과거에는 버스 1대 당 하루 31만원 가량이던 운송수입금이 지금은 37만원선까지 올랐다. 이렇게 되면서 회사의 부채도 갚아 나가고 있고 퇴직자들의 퇴직금도 16억정도를 청산해 이제는 2억정도만이 남아 있다.

나위원장과 이상도 사장은 한목소리로 "아직 퇴직자들의 상여금과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상여금을 해결해주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며 자주기업으로 전환 후 다 같이 고생하고 있는 조합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 "진아교통 달라진 건 승객도 알아요"

나위원장과 이상도 사장은 버스 노선의 중요 기점에서 배차간격을 조절하기 위해 매일아침 압구정역과 금호역으로 각각 출근한다.

의례 출근 시간에 차량이 많은 지역에서는 길이 막혀 버스의 배차간격이 지나치게 벌어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위원장과 사장이 직접 현장에 나가 있다가 배차가 지나치게 길어지면 예비차를 투입하고, 또 차가 오지 않아 답답해하는 승객들을 위해 버스의 위치를 전화를 통해 알아보고 알려준다고 한다. 이를 위해 압구정과 도곡동만 순환하는 예비차제도를 서울시로부터 허가받고 운행 중에 있다.

"이제는 그 지역에서 타는 승객들의 얼굴까지 알아볼 정도가 됐다. 또 다른 회사의 버스 위치도 알려주니까 승객들이 아주 좋아한다."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으로 전환 후 달라진 진아교통의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다.

운행을 나가는 모든 운전자는 가슴에 '정성을 다해 친절히 모시겠습니다'라는 말이 쓰인 띠를 두르고, 승차하는 손님마다 인사를 한다. 현장에 나가 있는 나위원장과 이사장도 마찬가지다.

"'사장까지 나와서 인사하니까 하루가 즐겁다'고 한 승객이 그러더라"라는 이사장의 말한다. 또 38-2번을 자주 이용한다는 한 승객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 들어 꼬박꼬박 인사를 하는 등 운전자의 친절도가 상당히 달라졌다. 길이 막히는 때에는 버스 안의 쓰레기를 운전자가 줍기도 한다. 노동자가 회사를 인수했다고 하더니 확실히 좋아졌다."

"보다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의 단결과 신뢰다. 노조에서 기업을 우리보다 앞서 인수한 회사들이 망한 이유가 서로 불신하고, 회사간부들이 조합원을 속이는데 있었다. 회사경영을 투명하게 하는 만큼 우리를 믿어주고 힘들어도 같이 참아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 "걱정이요? 걱정을 왜 합니까?

이렇듯 서서히 경영정상화와 이미지 변신을 이루고 있는 진아교통이지만 아직 성공만을 장담하기엔 이르다고 말한다. 여전히 부채가 남아 있고 퇴직자들이 체불임금과 관련해 민사소송를 제기하기도 하는 등 해결해야할 문제도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이날 새롭게 배분된 주식보관증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조합원에게 기자는 소감이 어떠냐는 우문을 던졌다.

"좋지요."

너무 짧고 명확하게 대답하는데 오히려 당황한 기자는 또 한번 우문을 던진다.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다던데 걱정되지 않으세요?"

"걱정이요? 걱정을 왜 합니까? 인수하고 난 뒤 좋아지고 있고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걱정은 없습니다. 이젠 우리 모두가 주주 아닙니까?"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노동자들이 운영하는 진아교통이 성공한 노동자자주관리기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회사간부와 조합원이 함께 쌓아가고 있는 신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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