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분당에 위치한 한국토지공사 노조사무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노조 간부들이 이날 점심시간에 '토공·주공 통합반대를 위한 사내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회사 준비하랴 이것저것 점검하고 있는 박광식 위원장은 지난 6월 말 선거때부터 '통합저지'를 결의하며 삭발을 했던 흔적이 남아 아직도 머리카락이 짧았다. 간부들도 선거 직후부터 노조 사무실에서 철야농성을 계속해온 덕에 일부는 수염까지 덥수룩해 외모로 봐서는 '깔끔한 공기업'의 직원들로 믿어지지 않았다.

* 토공 조합원들의 통합반대 열기

스피커를 점검하고, 현수막을 1층 입구에 설치하는 등 분주하게 집회준비를 마친 간부들은 다시 조합원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사무실로 바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취재에 응하느라 집회 준비에 빠져있던 박정우 홍보국장은 "조합원들이 통합반대투쟁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 대부분 다 모일겁니다"라며 느긋한 모습이었다.

간부들의 집회준비 모습을 계속 지켜본 기자는 '조합원들이 얼마나 모일까'가 궁금했다. 그런데 집회시간이 다 되도록 조합원들이 보이질 않는다. 토지공사 건물이 독특한 구조로 돼있어 동선이 길다보니 걸어다니는 조합원들이 보이질 않는다.

시계에 계속 눈길을 주다보니 어느새 오후 12시10분. 등쪽에 '통합저지'라고 씌인 남색 티셔츠를 입은 조합원들이 한명 두명씩 나타나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지난 8월초부터 출근하자마자 '통합저지'라 쓰여진 노조 티셔츠로 갈아입는다고 한다.

토공노조 조합원들이 통합에 대해 느끼는 반감은 아주 심하다고 한다. 전체 2,300여명의 직원중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700여명을 떠나보냈음에도, 부동산 경기가 극도로 침체된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기업경영평가에서는 98년 10위, 99년에 5위를 거쳐 지난해는 2위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 "계획된 거라고 무조건 밀어붙이나"

순식간에 이른 점심을 먹은 200여명의 조합원들이 1층 로비에 모여들었다. 이들이 외치는 '통합저지' 구호가 전체 건물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다.

토공노조는 조합원들이 통합을 반대하는 것은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중복기능해소와 경영효율화를 위해 통합을 한다는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건교부가 한국개발연구원과 국토연구원에 의뢰한 '토공과 주공의 통합방안 연구'에서도 두 기관의 중복기능은 택지개발사업으로 인력기준 7.8%, 매출액대비 6.7%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경영혁신문제 또한 이미 공기업경영평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받았다는 입장이다.
박광식 위원장은 "가장 큰 문제는 지난 98년에 이미 수립된 계획이니 어쩔 수 없다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토공노조가 주장하는 통합의 문제점은 재무위험집중과 극심한 조직갈등으로 인한 기업의 부실화이다. 두 공사를 통합하게 될경우 자산 30조원, 부채 21조원, 연간이자비용 1조5천억원, 직원 5,000명의 거대공룡 공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현재 흑자기업인 토공의 직원들은 적자기업인 주공과 통합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더구나 조직규모에선 주공이 종업원이 더 많아 토공노조는 통합에 따른 구조조정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주공노조가 통합에 대한 입장에 있어 토공노조와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통합시 조직갈등 부분도 우려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들은 통합농협, 건강보험공단, 농업기반공사 등 통합후유증에 시달리는 공기업들의 문제가 남의 얘기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공노조(위원장 장대익)는 "강제적 인력감축이 있다면 통합은 반대"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토공노조의 이날 집회는 다음날 기획예산처 앞에서 개최한 '통합저지결의대회'의 사전집회 형식도 갖고 있었다. 지난 31일 오후 기획예산처 앞 집회에는 수도권 지역 조합원 500명이 참여해 뜨거운 열기를 쏟아냈다. 토공노조는 오는 7일에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집회를 갖는 등 투쟁수위를 점차 높여갈 방침이다.

박정우 홍보국장은 "우리에겐 앞으로 정부의 부동산관련 정책조절이라는 면에서도 토공업무의 유지가 더욱 필요하다는 명분이 있다"며 토공노조의 투쟁을 조직이기주의로 폄하시켜선 안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국장은 일본에서 이미 토공과 주공과 비슷한 두 공사를 통합시켰다 경영부실이 심각해지자 다시 기능을 재편했던 사례도 토공노조가 싸움을 멈출 수없는 한 이유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통합추진이 상당히 진척된 상황에서 현 집행부는 출범하자마자 철야농성을 진행하고, 1인 시위, 청원서 제출 등 숨가쁘게 달려왔다. 조합원들이 통합저지 투쟁에 대한 호응은 지난달 말까지 기획예산처와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33일째 벌여온 조합원들의 1인 시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처음해본 1인 시위에 "창피하다"는 조합원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1인시위는 계속 이어져 지금은 전국의 각 지부에서 정당 앞 1인시위까지 진행되고 있다.

토공노조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통합의 문제점을 여론화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는 반면, 이번 국회에 통합법안이 상정될 것을 대비, 대응책 마련도 한창이다. 토공노조가 통합반대 투쟁에서 신경쓰는 것 중에 하나가 여론화 작업이다. 토공이나 주공의 업무가 국민들의 피부에 쉽게 와닿는 부분이 아니다보니 통합문제점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가 토공노조를 떠나기 전 박광식 위원장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이번 국회때 통합법안을 상정한다면 우리는 토공노조 사상 첫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토공노조 조합원들의 '통합문제점'을 외치는 목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것인지, 화답을 들을 수 있을지 여부는 이들의 9월투쟁 이후를 지켜봐야 가늠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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