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고법판사가 현행 대법관 임명제청방식은 법관들이나 일반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개선을 주장, 파문이일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5부 정진경(37.사시 27회)판사는 최근 법관 전용 통신망에 올린 `대법관 임명제청방식의 개선을 바라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아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기 쉬운 대법원장이 독자적으로 대법관을 임명제청하는 것은 대법원장을 통해 사법부의 독립이 위협받을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정 판사는 이 글에서 "대법관 임명방식은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에서 사법권독립의 측면을 고려하는 한편, 국민들의 의사반영이라는 민주적 정당성의 측면이 고려돼야 한다"며 사법부 구성원이나 국민의 의사반영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정 판사는 또 대법관 인사청문회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동의에 회부한 인사를 여당에서 문제삼기는 일반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비판한 뒤 절반은 경력 10년 이상의 법관으로, 나머지 절반은 변협, 검찰, 법학교수, 시민단체 등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30∼50명 가량의 법관추천회의에서 추천한 후보를 대법원장이 임명제청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법관추천회의는 1,2,3공화국 시절에도 있었던 것으로 우리에게 낯선 제도가 아니다"며 "대법원장의 임명에 있어서도 이와 유사한 절차를 통해 대통령의 자의적인 임명권 행사를 저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판사의 주장에 대해 판사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정 판사의 글이 오른 뒤 한 판사는 법관 전용 통신망에 "대법원장에 대한 표현 중 일부가 너무 거친 것 아니냐"는 비판글을 올렸는가 하면 일부 판사들은 "진정한 사법권 독립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지가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적절하고 용감한 주장"이라고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또 "누가 진짜로 훌륭한 대법관 후보인지는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동료 판사들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90년대 초에도 이미 검토됐지만 추천회의 내부에 서로 이질적인 구성원들이 모일 경우 파벌 형성 우려가 있고 법원이 정치판으로 변할 우려도 있어서 기각된 의견"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정 판사는 "법관추천회의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현재의 시스템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내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사법부 독립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지난 89년 대전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재조생활을 시작한 정판사는 지난해 6월 특검제 도입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한시적 특검제 찬성. 재정신청 대상확대'를 주장하는 글을 법관 전용통신망에 띄워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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