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제대로 읽겠다고 미루다 한 달이 갔다. 지난달 20일 함세웅 신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을 포함해 172명이 참여한 원로선언 추진모임이 기자회견을 열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면서 편지를 공개했다. “김진숙 동지가 문재인 대통령에 전하는” 편지였다.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김진숙이 단 하루라도 복직이 돼서 자신의 두 발로 당당하게 걸어 나오게 해야 한다”며 “늘 우리 손을 잡았던 김진숙의 손을 이제 우리가 잡아야 한다”고 밝히고, “노동존중 사회와 김진숙 복직은 별개가 아니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가 김진숙 복직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죽고 잘리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자신의 복직을 촉구하는 편지가 공개됐던 것인데(이상 매일노동뉴스 2020.10.21.), 나는 오늘에야 이렇게 찾아 읽는다.

2. 김진숙은 1981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해 용접사로 일하다가 노조 대의원으로서 당시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했다. 이 때문에 대공분실에 연행돼 고문당한 후 1986년 7월 해고됐다.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뒤 민주화보상위원회가 2009년과 올해 9월 사측에 그의 복직을 권고했다. 하지만 사측은 수용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올해 정년(60세)을 앞두고 있다.

35년 동안 해고자로서 그는 언제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저지 및 해고자 복직 투쟁 현장에 있었다. 하지만 그 투쟁 끝에 많은 노동자들이 복직할 때에도 그는 여전히 해고자로 남았다. 2003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 김주익이 크레인 농성 중 목숨을 끊고, 곽재규 조합원이 목숨을 끊은 뒤에 사측은 기존 해고자 전원 복직을 약속했을 때에도 그를 제외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2011년 그는 사측의 대규모 정리해고 실시를 저지하기 위해 타워크레인에 올라 농성투쟁을 전개했다. 309일만에 걸어 내려올 수 있었는데, 당시 걸림돌이 될 걸 우려해 그는 정리해고 철회 때는 자신을 복직 요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렇게 타의와 자의로 한진중공업 해고자로 남은 그가 이제 올해로 정년이고, 그래서 정년이 도과하기 전에 복직해서 퇴직하기를 바라며 부산지역에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옛 동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통해서 자신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하다고 “김주익의 17주기가 며칠”이 지난 날에 “간절하게 묻”고 있다.

3. 김진숙의 편지 소식을 접하고서 그에게 ‘옛 동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는 것인가’ 하고 아주 잠시지만 나는 생각했다. 민주화운동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전개되던 1980년대의 거리에서 함께했던 그들이 오늘도 여전히 동지로 추억하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존중 사회 실현에는 김진숙이 꿈꾸는 복직도 포함돼 있는 것인지 나는 궁금했다.

그동안 약 30년, 하나의 운동으로 달려오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으로 민주화한 세상에서 이른바 ‘민주’ 권력은 귀족노조 운운하며 노동운동을 핍박하기까지 했다. 그것이 노골적으로, 공개적으로 했던 것이 노무현 정권에서, 그와 1980년대에 함께 투쟁한 옛 동지 노무현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그런 세상에 대해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라고 절망해 유서를 남기고 김주익 지회장은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단순히 말로만 했던 핍박이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2003년 마련한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은 그 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제도 같은 이 나라 노동자의 노조할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을 몰고 왔다.

편지에서 김진숙은 “86년 최루탄이 소낙비처럼 퍼붓던 거리 때도 우린 함께 있었고, 91년 박창수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투쟁의 대오에도 우린 함께였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자리에도 같이 있었던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져 서로 다른 자리에 서게 된 걸까”라고 문재인 대통령에 묻고 있다. 오늘 “노동자들은 최대한 어릴 때 죽어야, 최대한 처참하게 죽어야, 최대한 많이 죽어야 뉴스가 되”고 있다며 김진숙은 물었다. 단순히 그는 자신의 복직을 위해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편지에서 그는 “실습생이라는 노동자의 이름조차 지니지 못한 아이들이 죽고, 하루 스무 시간의 노동 끝에 ‘나 너무 힘들어요’라는 카톡을 유언으로 남긴 택배노동자가 죽고, 코로나 이후 2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죽고, 대우버스 노동자가 잘리고, 아시아나케이오, 현중하청(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이 잘리고, 잘린 비정규직들은 수년째 거리에 있”다며 옛 동지인 대통령에 노동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 명시적으로 편지에 쓰지 않았지만 김진숙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절망의 노동현실을 이야기하고 대통령으로서 그 현실을 개선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겠다. 비록 “옛날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하다고 옛 동지로서 간절하게 편지를 마무리하고 있지만, 김진숙은 자신의 복직만이 아니라 이 나라 노동현실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제대로 알아 달라 하고 있는 것이다.

4. 2011년 노무현재단 이사장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 5년에 대한 복기를 강조한다”며 그 복기를 “노동운동 진영도 함께 해야 한다”고 ‘문재인의 운명’이란 책에서 말했다. 정권을 운영한 자신들뿐만 아니라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 전체가 함께해야 한다고 복기를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을 복기했던 것이기에 오늘 이 나라에서는 편지에서 김진숙이 절망한 노동현실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인가.

통계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20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대한민국 전체 임금노동자 2천44만명 중 비정규직이 742만명(36.3%)이고, 장기 임시노동자를 더하면 885만명(41.6%)이다. 여기에는 비임금노동자 663만명은 포함돼 있지 않다. 비정규직 비중은 지난해에 비해 0.1% 하락했을 뿐 거의 차이가 없다.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의 평균 취업시간과 월 평균 임금은 오히려 감소했다. 비정규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고용보험은 46.1%, 건강보험은 49.0%, 국민연금은 37.8%에 그쳤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9.6%에 지나지 않는다. 노조 가입률을 보면, 임금노동자는 12.3%인데 정규직은 17.6%이고, 비정규직은 3.0%에 불과한데 지난해에 비해 높아지지 않았다. 임금노동자의 19.0%는 노조 가입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 그중 64.8%가 가입한 반면, 비정규 노동자의 경우는 5.3%만 노조 가입이 가능하고 이중 노조 가입 비율은 지난해에 비해 1.8% 하락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0.6%로 노조 가입은 꿈꾸기도 어렵다.

어디를 살펴봐도 암담하기만 하다. 분명히 노무현 정권 5년을 복기해서 마련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의 공약일진데, 그 공약을 이행했다는 객관적인 노동현실은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공약을 살펴보면(‘나라를 나라답게’ 제19대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참조),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원칙 정착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OECD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던 것도,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 제정으로 차별 없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도, “최저임금(시급) 1만원과 생활임금제 확산으로 국민소득을 증진시키겠”다는 것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 위상에 걸맞는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는 것도 모두 이행되고 있지 못하다. 복기는 공약 마련에서였고, 그 이행에서는 아니었다. 말은 있어도 행동은 없었다. 오늘도 이 나라 노동자들은 노동존중이란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다. 하지만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공약한 대통령으로서 그 공약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2017년 5월 촛불대선에서 선출된 옛 동지 문재인 정부의 시간이 흘러갔다. 분명히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노동존중을 말하고 있건만,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법제도는 나아지지 않고 절망의 노동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옛 동지로서 김진숙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이제라도 이 나라의 노동현실을 들여다보고 그 개선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호소한 것이겠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면, 가장 많은 피를 뿌린 건 노동자들인데, 그 나무의 열매는 누가 따먹고, 그 나무의 그늘에선 누가 쉬고 있는” 것이냐고, “언제까지나 약자가 약자를 응원”해야 하는 것이냐고, 옛 동지이기에 대통령에 묻고 있는 것이겠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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