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스페인 몬드라곤이나 캐나다의 노동금고 또는 인민금고에 대해서는 그간 여러 곳에서 기사로 다뤄지거나 책으로도 소개됐다. 하지만 가깝지만 먼 나라인 일본 노동금고 사례는 많이 접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해야 할 학습을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의 노동공제나 노동금고는 모두 협동조합운동 속에서 만들어졌다. 2차 대전 패망 후 일본의 금융기관은 경제를 살리는 데 총동원됐다. 고객으로부터 모은 자금을 국영기업이나 민간기업에는 투자했지만 생계가 급한 노동자들에게는 대출을 하지 않았다. 노동자와 개인은 금융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고 고리대금업자나 전당포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45년 11월 만들어진 일본협동조합연맹(일협동맹)은 노동자와 소비자를 위한 은행을 만드는 활동을 시작했다. 일협동맹은 그간 인가된 기관에만 한정됐던 식량 배급 및 도매취급 면허를 얻고, 정부자금에 접근할 수 있는 근거법을 만드는 데 주력해 1948년에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생협법) 제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협동맹은 생협법 속에 신용사업에 관한 조항을 포함시키지 못했고, 정부의 자금에 접근하는 것도 실패했다.

이에 일협동맹은 노조를 움직여 공동으로 노동금고를 설립하는 길에 나서게 됐다. 1949년에는 일본노동조합총동맹이 노동자에 의한 자율적인 보험과 은행 설립을 지향하는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또한 1950년에는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가 발족 회의를 통해 파업을 위해 자금을 모을 수 있는 노동자를 위한 은행을 설립하자는 방침을 결의하게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카야마현의 생협연합회와 효고현의 노조총동맹에서 개별적으로 노동자를 위한 은행을 설립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에 처음으로 오카야마현과 효고현에 각각 하나씩 노동자를 위한 은행이 설립됐다. 그 후 노동성(현 후생노동성)에서도 우호적으로 협조해 다른 현의 노조들도 이에 따르게 됐다.

1951년에는 6개 노동자은행의 단체인 노금협회를 설립하고 적절한 법 정비를 요구했다. 일협동맹의 후신인 일본생협련은 법안 준비·채택에 함께 협력했다. 그 결과 1953년에 노동금고법이 제정됐고, 후생노동성과 대장성이 관할 관청이 됐다. 노동금고법 제정 후에 신용조합은 노동금고가 됐고, 1955년에는 노동금고연합회가 설립해 노동금고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게 됐다. 1966년에는 일본의 47개 도도부현 전체에 노동금고가 설립하게 된다.

한편 일본생협련은 1952년에 협동조합보험업에 대한 지침도 제안했다. 노조가 이를 이어받아 노동공제를 조직하기 시작해 1954년에는 오사카에서 화재공제를 목적으로 하는 최초의 노동공제가 설립됐다. 그런데 오사카에서 노동공제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사카 대화재가 발생했다. 이 일로 인해 위험에 대비해 원자금을 충분히 확보해 놓아야 할 필요성이 명확해졌고, 1957년에는 노동공제의 전국연합회인 노제련이 재보험기관으로서 설립됐다. 1967년에는 전국 40개 도의 노제가 합쳐 전노제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노동금고는 1950년대에 노동자용 주택담보 대출을 시작으로 1958년에는 일본 노동자주택협회를 설립했다. 1971년에는 근로자재산형성촉진법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서독 모델에 따라 임금에서 공제해 노동자의 개인 계좌에 적립해 자산을 형성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재형저축은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에 도입된 바 있다. 노동금고는 ‘무지개 예금’이라는 이름으로 이 상품을 전국적으로 판매했고, ‘무지개 예금’은 재형저축 상품으로 일본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상품이 됐다.

1980년에는 일본노동자신용기금협회(일본노신협)가 공익법인으로 설립돼, 노동금고는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도 주택융자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일본노신협은 모든 노동금고 주택융자에 대해 보증을 제공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금융자유화 속에서 금융시장 경쟁이 한층 격렬해졌다. 일본에서 일어난 금융위기로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주요 은행 및 증권회사가 파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시기에도 노동금고는 투기적인 대출에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건전한 재정 상태를 유지했다.

사회적 금융으로서 노동금고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의 지면을 빌리도록 하겠다. 강조하고 싶은 건 일본의 노동금고는 협동조합운동과 노조운동의 만남으로 탄생했고, 그 운영도 협동조합과 노조의 원칙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춰 본다면 우리나라의 협동조합금융이나 한때 시도했던 노동금융이 원칙 없이 운영된 점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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