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전태일 열사가 훈장을 받았다.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전태일 열사에게 추서했고, 청와대에서 열린 추서식에는 열사의 동생 등이 참석해 문 대통령과 환담을 가졌다. 분신한 1970년 11월13일로부터 50년, 그는 이렇게 ‘노동인권 개선 활동을 통해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가 훈장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에게 드린 훈장은 ‘노동존중 사회’로 가겠다는 정부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라며 “50년이 지난 늦은 추서지만 우리 정부에서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께 훈장을 드릴 수 있어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970년에 저는 고3이었다.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뜨고 인식하는 계기가 됐고, 나중에 노동변호사가 됐다”고 소회를 밝혔으며, “전태일 열사의 부활을 현실과 역사 속에서 느낀다”며 “노동존중 사회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발걸음은 더디지만 우리 의지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강조했다.(매일노동뉴스 11월13일자). 또한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가 했던 주장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며 “하루 14시간 주 80시간 노동이 연 1천900시간 노동으로, 하루라도 쉬게 해 달라는 외침이 주 5일제로, ‘시다공’의 저임금 호소가 최저임금제로 실현됐다”고 설명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2. 분명히 뜻깊은 날이다. 일부 노동단체는 열악한 노동현실을 은폐하려는 목적에서 문재인 정부가 ‘위선’행위를 한 것이라고 비난하며 냉소를 보내기도 했다지만, 열사 정신을 받들어 나아온 이 나라 노동운동으로서도 열사의 훈장 추서를 간단히 폄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마라”고 외치며 평화시장 앞길에서 쓰러졌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새롭게 출발해 부활하는 계기였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말살되고 잊혔던 노동자·민중의 운동은 전태일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되살아날 수 있었다. 청년 전태일은 죽음으로 당시 노동운동이 관제화·어용화돼 죽었다는 것을 세상에 고했다. 이후 그를 읽으며 이 나라에서 자본과 권력에 대해 자주적인 노동운동이 전개됐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은 전태일 정신을 받들어 전국노동자대회 등을 개최해 투쟁해 왔고,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 나라에서 노동인권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보자면, 결코 높이 받들어 표창하는 걸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재단사 전태일이 삼동친목회 회장으로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조건개선 진정서’를 노동청에 제출했지만 개선되지 않았고, ‘국부이고, 곧 저희들의 아버지’라고 표현하며 대통령 박정희에게 탄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세상은 그의 진정과 탄원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당시 박정희에게 보낸 진정서에는,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시간~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라고 요구하고 이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라고 밝히고 있었지만, 그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다. 노동자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 권리로 근로기준법에 규정해 놓은 걸 읽고서 요구했음에도 세상은 그와 평화시장 노동자의 호소를 철저히 외면했다. 이것이 50년 전,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삶이고 권리 상태였던 것이고, 오늘은 당시 그의 행위를 훈장으로 표창하고 있는 것이니 확실히 세상이 달라지긴 한 것인가. 당시는 진정서에 답변조차 들을 수 없었던 대통령에게서 훈장 추서를 받은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자.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가 했던 주장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며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살펴보자. 평화시장 등에서 일하는 봉제노동자들은 전태일이 요구했던 대로 “1일 10시간~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면서” 일하고 있을까. 그리고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받고,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급여를 지급받고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이 나라 노동자가 연 1천900시간, 주 5일제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1970년대 평화시장 노동자들과 같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그와 같이 일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택배노동자 등 많은 노동자들이 오늘도 하루 14시간 이상으로, 휴일도 쉬지 못하고 일하고, 그 때문에 과로로 숨졌다는 뉴스가 잇따르고 있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제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자랑하지만, 그 법은 상시 300명 이상, 50명 이상 등으로 순차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상시 5명 미만은 적용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간단축은 평화시장 봉제노동자들 대부분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니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노동시간을 단축해 달라고 대통령에게 진정할 게 분명하다. 대통령의 이름만 달리하고 내용 일부를 수정하고서 진정서를 제출하게 되면 무어라고 대답해 줄 것인가. ‘당신의 삶과 죽음을 읽고서 노동자의 처지를 깨닫고 노동변호사로 일했고,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공약했노라’고 대답해 줄 것인지 나는 궁금하다. 만약 그와 같이 대답한다면 아마도 전태일은 자신이 받은 훈장을 반납하겠다고 할지 모르겠다. 바보회·삼동친목회·노조를 조직해 어린 시다공을 비롯한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기를 바랐던 그의 호소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공약한 대통령의 정부에서조차도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에 절망할 것이다. 자신과 어머니 이소선에게 훈장 추서를 한 대통령의 ‘노동존중 사회 실현’에 답답해할 것이다.

4. 윤희숙 국민의당 의원이 13일 소셜미디어에 “52시간 근로 중소기업 전면 적용을 코로나 극복 이후로 연기하는 게 전태일 정신을 진정으로 잇는 것”이란 글을 올렸다고 시끄럽다. 주 52시간제 시행 연기가 전태일 정신이라니 당연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다. 감히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제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의 정신을 내세우다니 말이다. 윤희숙은 근로기준법에 1일 8시간 등으로 법정근로시간을 규정해 놓았던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며 그래서 ‘선량하고 반듯한 젊은이 전태일로서는’ 답답했을 거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윤희숙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전태일이 답답해했던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법 때문이 아니었다. 장시간 노동 현실과 그걸 방치하고 있는 노동행정에 대해서였다. 결코 장시간 노동 현실을 정당화해 주는 장시간 노동법을 마련해 달라고 분신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윤희숙은 전태일을 엉뚱하게 읽고서 썼던 것이다. 그렇다고 윤희숙에 대한 비판이 모두가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윤희숙은 현실에 맞게 법을 만들어 시행해야 하는 것이라서 주 52시간제법도 시행을 미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윤희숙에 대한 비판은 1일 8시간 등으로 규정한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제를 이 나라 노동자 모두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떳떳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앞에서 본 것처럼 심지어 전태일 열사에 훈장을 추서한 정부조차도 그렇지 못하다. 1일 8시간 등으로 규정한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은 법정근로시간으로 집행되고 있지 못하고, 심지어 이를 1주간에 12시간 연장한 주 52시간제마저도 사업장의 사정과 규모에 따라 예외를 인정해 적용하지 않고 있다. 도저히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말하는 정부로서는 떳떳하다 할 수 없는 노동현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5. 노동존중 사회는 열사에 대한 훈장 추서로 실현되지 않는다. 노동존중 사회는 열사가 했던 것처럼 오직 행동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런데 촛불대선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는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노라는 말은 많았어도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법 마련을 위한 행동은 잘 보이지 않았다. 주 52시간제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에서도, 1만원을 공약했던 최저임금 인상에서도 나는 볼 수가 없었다.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집권 더불어민주당 의석만으로도 넉넉히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입법을 할 수가 있는 것인데도 그걸 하지 않고 하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의 말은 공허하고 답답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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