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오전 경기 마석 모란공원묘역에서 전태일 5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정기훈 기자>

“인간답게 살고 싶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열사가 통곡한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른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전태일 열사 묘역을 둘러쌌다. 그들의 손에는 먼저 떠난 동료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들려 있었다. ‘2003년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31)’부터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24세)’까지.

13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 앞에서 전태일 5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는 열사의 유언을 잇고자 하는 이들로 묘역 주변은 발 디딜 틈 없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아직도 우리 사회는 근로기준법 밖에서 기계처럼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전태일과 더 굳게 손잡고 평등의 100년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이재명 지사 “근기법 지키는 사회 만들 것”

추도식은 전태일 열사 가족 전태삼·전순옥·전태리씨가 하루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수여받은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을 고인에게 올리면서 시작됐다.

양대 노총 위원장은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5명 미만 영세사업장·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투쟁에 힘쓰겠다고 입을 모았다.

박상희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사무장은 IT청년노동자를 대표해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다. 박 사무장은 “아직도 많은 IT노동자가 포괄임금제라는 이름으로 장시간 노동을 감수하며 판교와 구로의 등대로 불리고 있다”며 “프로젝트 성공과 실패에 따라 누군가는 실패의 책임을 떠안고 이직을 강요받는다”고 업계 상황을 알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추도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자 비정규 노동자들은 “더불어민주당은 노동개악 중단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소리쳤다. 이재명 지사는 “지금 말씀한 여러 사항을 더불어민주당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깊이 새기고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 지사는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모두가 약속한 규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용기 준 열사에 감사”
“당당한 노동운동 되기를”


가수 하림은 추도식 막바지에 2010년 당진 용광로에 빠져 사망한 20대 청년을 위한 추모곡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불렀다.

추도식이 끝난 뒤 28회 전태일노동상 시상식이 이어졌다. 전태일재단과 <매일노동뉴스>가 공동주관하는 2020년 전태일노동상은 택배연대노조(단체부문)와 김호철 민중가요 작곡가(개인부문)가 받았다. 올해부터 개인·단체·국제부문으로 나눠 수여됐다. 국제부문 수상자는 선정되지 않았다.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은 “근기법을 지키라며 온몸을 내던진 그(열사)의 울림은, 오늘날 택배 현장에서 노예의 굴레를 쓴 택배노동자가 불의에 항의하다 수도 없이 해고됐지만 굴하지 않고 현장에서 끝끝내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며 “전태일 열사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김호철 작곡가는 암투병 중인 부인을 간병하느라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대리 수상한 박준 민중 가수는 “어제 (김호철 동지와) 통화를 했고 몇 가지 말씀을 주셨다”며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이 (열사의) 말속에 (담긴 뜻을 새기면서) 지금의 노동운동과 모든 조직 안에서 대오각성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당당할 수 있는 노동운동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 “(김호철 작곡가는) 노동개악을 분쇄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날 이 자리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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