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소희 기자>

정부가 택배노동자 과로 방지를 위해 주 5일제를 유도하고 심야배송을 제한한다는 과로사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이 밖에도 택배업계 불공정 관행으로 여겨지는 ‘백마진’ 문제에도 정부가 개선 의지를 밝혀 택배노동자를 과로로 몰아넣은 택배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개선될지 주목된다. 백마진은 택배사가 화주에게 물량거래를 전제로 택배수수료의 일부분을 지급하는 행위를 뜻한다.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날 택배노동자 장시간 노동 문제와 택배산업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 계획을 밝혔다.

“주 5일제 유도하고 ‘백마진’ 개선”

이날 노동부가 발표한 과로방지대책에는 택배노동자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산업재해 적용제외 신청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재갑 장관은 “택배사별로 상황에 맞게 하루 최대 작업시간을 정하고 그 한도에서 작업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밤 10시 이후 심야배송은 앱 차단을 통해 제한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노사와 함께 주 5일제 도입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다.

노동자들이 공짜노동으로 부르는 분류작업 개선책도 내놓았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줄곧 장시간 노동의 주된 원인으로 하루 3~4시간 소요되는 분류작업을 꼽아왔다. 노동부는 “노사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분류작업을 명확화·세분화하고 표준계약서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불공정 거래개선 조치를 밝혔다. 김현미 장관은 “택배기사 수수료 저하를 야기하는 홈쇼핑 등 대형화주의 불공정 관행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백마진 문제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유성욱 택배연대노조 CJ대한통운본부장은 “홈쇼핑 업체는 택배기사가 반품 기한 내에 물건을 수거하지 못할 경우 택배기사에게 물건 가격을 지불하라고 요구한다”며 “이번 정부 조치는 그와 같은 불공정 거래를 시정하겠다는 조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산재 적용제외 제도 폐지해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줄곧 요구했던 ‘사회적 논의기구’도 구성된다. 택배사·정부·국회·노동자·소비자 등으로 구성된 ‘택배기사 과로 방지대책 협의회’는 정부 계획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협의회는 △적정 택배 수수료 △분류작업 분담 △토요일 휴무제 같은 핵심 사안을 논의한다.

이번 정부 대책은 택배노동자가 낮은 건당 수수료를 바탕으로 장시간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실태를 구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노동계가 폐지를 요구해 온 산재 적용제외 신청 제도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이날 “산재보험 적용제외 사유를 질병·부상, 임신·출산 등 불가피한 사유로 축소하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적용제외 요건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제도개선안을 내놓았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산재 적용제외 신청 제도에서 일부 사유를 허용하는 것은 사측과 택배노동자 간의 갑을관계에서 또다시 악용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택배회사들은 산재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며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료 부담문제에 대해서도 노동부가 개선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 속도 붙나

김현미 장관은 이날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의 입법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김 장관은 “연내에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법 시행 시기도 공포 후 1년이 아닌 6개월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은 지난달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해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도 빠른 입법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정부 발표에 앞서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 공동대표인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은 “이미 20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반대로 입법이 무산된 바 있다”며 “생활물류서비스법은 업계 의견이 조율된 법안으로 국회는 법 제정에 제 몫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동계에서도 생활물류서비스법에는 이견이 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와 라이더유니온은 지난달 국토부·더불어민주당·한국통합물류협회가 참석한 생활물류서비스법 협약식에 유감을 표했다. 이 법안이 종사자 권익 보호보다 사업자 지원에 치우쳐 있다고 주장했다.

진경호 택배연대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화물업계는 1.5톤 이상 화물자동차를 운전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택배업은 1.5톤 이하 화물자동차를 운전한다”며 “화물운송업계는 이 법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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