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관리자로 근무해 초과업무시간을 정확하게 산정하기 어렵더라도 정황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입증되면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1일 법률사무소 일과사람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김연주 판사)은 지역농협에서 임원으로 근무한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28일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지역농협에서 상무로 일하던 A씨는 2015년 1월 주말에 가족모임을 간 뒤 이상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돼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같은해 5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2018년 공단으로부터 고용노동부의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고시 개정을 고지받아 요양급여를 다시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A씨가 뇌출혈 발병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업무시간이 50시간 정도로 노동부 만성과로기준(60시간)에 미치지 못하고, 고혈압이라는 개인질환 관리에 소홀했다”며 요양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A씨는 공단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A씨의 노동시간이었다. 공단은 A씨가 12주 동안 주 평균 51시간4분 일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평균 업무시간이 57시간7분에 이른다고 주장했지만, 연장·휴일근무한 공식 기록이 없어 업무시간만으로 과로 여부를 따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A씨가 발병 직전까지 업무상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점 △A씨의 실제 업무시간을 산정할 수 없는 점 △평소 업무 사정을 감안했을 때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2시간을 초과했다고 볼 수 있는 점을 고려해 A씨의 산재를 인정했다. 노동부의 만성과로기준에 따라 A씨가 맡은 일과 질병의 관련성이 증가했고,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를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의 고혈압·흡연력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는 전문의 소견에 대해서는,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배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A씨를 대리한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사무·영업·연구·관리직과 같이 근로시간의 정확한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도 노동의 양·강도·질을 따지고 노동시간을 추정해 과로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며 “판결이 확정되면 요양급여·장해급여·휴업급여 신청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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