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 삶과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제정남 기자>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는 요구가 오늘까지 현실화하지 않고 있다는 성찰이 나왔다. 노동운동은 전태일을 따라 연대하고, 전태일의 헌신성·책임성·실천성을 본받고자 했지만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노동시장 양극화, 노동자 소외’ 심화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 삶과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가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개최하고 있는 국제포럼 행사의 하나로 열렸다.

한노사연 이사장을 지낸 이원보 노사발전재단 이사장은 첫 발제에서 전태일 항거 이후 노동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며 성과와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임금은 상승하고 노동시간은 줄고, 국민소득은 증가하는 외형적 개선이 이뤄졌다”며 “그렇지만 전태일이 외쳤던 인간선언, 노동자의 사람다운 삶은 얼마나 실현됐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에 따라 생활조건은 양극화했고, 여성과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는 여전히 사회에서 소외돼 있으며, 기술변화에 대한 불안은 커지고, 노조운동은 대표성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게 이원보 이사장의 진단이다. 그는 “외환위기로 수세로 몰린 노동운동은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라는 양 날개 전략을 내놨지만 지금 돌아봤을 때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대응, 녹색환경 문제, 노동분단 심화 같은 새로운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운동은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노사연 소장 출신인 노광표 한국고용노동교육원장은 두 번째 발제에서 전태일 정신의 뿌리인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급연대를 실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연대를 가로막는 기업별노조 체계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계급연대 실현의 출발을 기업별노조와 교섭구조의 타파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기업규모·고용형태별로 확대하고 있는 격차 해소 방안을 찾을 연대전략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노 원장은 “전태일이 살던 세상과 지금은 상황은 너무나 다르지만 (자본이 주도하는 사회라는) 본질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며 “노동의 시민권 회복이 아닌 노동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여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 “산별노조운동 재검토하자” 제안

노동계가 애쓰는 산별노조운동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원철 부산대 교수(사회학)는 토론 순서에서 “산업별 중앙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평준화시킨다는 전략 자체가 우리 조건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사회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조세정책 등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를 늘리는 전략도 노조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 볼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별노조를 통한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근로조건 격차축소 추진 노력은 계속돼야 하고 이는 중앙교섭 자체와는 구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혜진 세종대 교수(경영학부)는 “노동운동은 노동시장 양극화·노사관계 이중화 전략을 편 기업에 주도권을 뺏겨 전태일의 정신인 연대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고 사실상 외면했다”며 “조합원을 대표하는 조직을 넘어서서 새로운 경제·사회 미래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운동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대 노총은 반성했다. 김석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감히 말하길 민주노총이 있던 25년과 없던 25년은 많이 달랐다”면서도 “민주노총에 걸었던 기대와 요구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반성할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노동·시민사회가 계승·복원해야 할 전태일 정신의 핵심은 평등과 연대”라며 “전태일 정신 이행이 한국노총이 살아남고 가야 할 길이라는 점을 절감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토론회 축사에서 “과거보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노동권도 많이 신장했지만 노동을 존중하고 함께 잘 살자고 외친 전태일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며 “노동이 단순히 생계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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