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김기덕

1. 지난 8일, 모처럼 할 일 없는 일요일이라서 안방에서 TV 채널을 돌리다가 조 바이든(Joe Biden)의 미국 대통령 당선연설 장면을 봤다. 언론마다 3일부터 개표 소식을 주요뉴스로 보도해 왔던 터라 개표가 진행될수록 그의 승리로 46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요 경합주의 개표가 100%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선연설을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당선자 발표를 통해서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접했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미국에서는 CNN 등 언론사가 당선 뉴스를 내보내는 것으로 후보자가 당선연설을 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졸지에 할 일 없는 내 일요일이 별 볼 일 있는 날이 돼 버렸다. 뭐 그렇다고 대단히 뜻깊은 날이라는 건 아니다. 바이든은 자신은 미국민 전체를 위해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그토록 통합을 강조해서 연설하고 있었는데, 그토록 그가 친애해 마지 않는 국민 여러분에 해당하지도 않는 내가, 그의 당선에 감격한다는 것도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납득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연설 자체로 말하자면 그보다 앞서 했던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의 승리연설이 훨씬 감흥 있었다. 인종과 성 차별 극복을 위한 투쟁사를 떠올리게 했던 연설에서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승리’에 대한 그녀의 감격을 읽을 수 있었다. 19살에 인도에서 미국으로 온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며 흑인 여성을 포함한 여성들이 투쟁과 희생을 통해 평등과 자유, 그리고 정의를 이뤄 왔다고 했다. 자신이 부통령직을 수행하는 첫 여성이지만 자신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해리스는 웅변했다. 사실 이런 연설을 들으면서도 내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노동에 대해 무어라고 연설하는지에 있었다. 그러나 해리스가 미국 노동자들이 경제적으로 회복하도록 하겠다는 말한 것 말고는, 그들의 연설에서 노동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바이든의 승리가 미국 노동자들에게 승리인지 아닌지 8일 당선연설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 봤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무엇을 공약했던 것인지, 바이든의 승리가 미국 노동자에게 어떤 자유와 권리를 줄 수 있는지를 찾아 봤다.

2. 바이든 후보측이 무엇을 공약했는지 찾아 보니, 실업과 건강보험 등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5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 외에 최저임금을 시급 15달러로 인상하고, 노동자 단결을 강화하는 노동법을 만들겠다는 것이 주요 노동정책 공약이었다. 사회보장과 일자리 창출을 제외하면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자 단결권 강화를 위한 노동법 추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최저임금은 현재 시급 7달러이니, 15달러로 인상한다면 배 이상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연방국가로서 미국 전체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도 주별로 도시별로 이러한 연방 최저임금 보다 상회하는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경우가 많고, 이미 15달러를 최저임금으로 정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연방 최저임금을 현재보다 배 이상 인상하겠다는 공약이니, 바이든이 이행한다면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 권리 향상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2020년까지 시급 1만원을 공약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그의 임기가 다 돼도 공약 이행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과 달리, 바이든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것이 ‘딴나라’ 대한민국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것이 아닌데도 나는 기대해 본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이 나라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할 때면 미국 최저임금이 7달라고 하던 경총 등 이 나라 사용자단체의 말을 더는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 최저임금이 15달러라고 우리 노동자측의 주장 근거로 내세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딴나라’ 대통령의 공약이라도 부디 이행되기를 미국 노동자와 같은 심정이 돼 바라 본다.

3. 이상의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공약이라 한다면, 노동자의 자유에 관한 공약은 노동자 단결권 강화를 위한 노동법 추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노동자 단결권 강화를 위한 노동법 추진은 노동자 단결보호법(PRO Act)(Protecting the Right to Organize Act) 개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노조조직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로 10% 정도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미조직 노동자 중 3분의 1 내지 2분의 1 정도가 노조에 가입하거나 사업장에서 노조설립에 찬성투표를 할 의사가 있다고 확인된다. 그런데도 노조 조직률이 낮다는 것은 사용자들의 노조 조직화 방해 작업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미국 노동법이 방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동안 미국에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노동법 개정이 추진돼 왔다. 노동자의 노조설립 자유 확대와 조정·중재를 통한 최초 단체협약 체결의 보장, 파업 등 쟁의권 보장을 공약했던 오바마의 정부에서부터 추진돼 왔다. 민주당이 다수인 미국 하원은 올해 2월6일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개인사업자 등이 노동자가 아닌 취급을 받지 않을 제도를 마련하고, 사업장에서 대표권 위임카드 서명으로 손쉽게 노동자들을 노조에 가입시키기 위한 조직화 운동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파업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대체 노동자 고용을 금지해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권을 보장하고 있다. 사용자가 응하지 않더라도 조정과 중재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최초의 단협 보장하며, 노조를 조직하거나 단협을 체결하려는 노동자들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사용자에게는 노동자에 손해배상하고 벌금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이 법안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조직해서 교섭과 쟁의할 단결의 자유를 보다 더욱 보장하고 있다. 공약한 대로 이러한 노동법의 입법을 추진한다는 것은 미국 상원에서 통과시켜 이를 미국 노동자들에게 단결의 자유로 보장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4. 만약 이 공약을 바이든이 이행하게 된다면, 분명히 미국에서 노조 조직률은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노총(AFL-CIO)은 바이든의 당선을 환영하면서 미국 의회가 바이러스에 맞선 응급 지원과 서비스를 지역사회에 제공하는 ‘보건 및 경제회복 비상 대책법(HEROES Act)’과 함께 이 노동자 단결보호법(PRO Act)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힌 것이겠다(매일노동뉴스 2020. 11. 9. 윤효원의 노동과 정치 “미국노총 ‘바이든의 승리는 미국 노동운동의 승리’” 참조). 미국노총 등 바이든을 지지한 미국 노동자들은 이렇게 “바이든의 승리는 미국 노동운동의 승리”라며 노동자 단결을 보호하는 법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겠다. 그런데, 공화당과 각종 입법을 협상하다 이를 제외한다면, 혹은 사용자편을 드는 공화당에 일부 양보한 내용으로 입법을 한다면 어찌되는 것인가. 이 나라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을 공약한 문재인의 정부가 아직도 그 협약 비준은 고사하고 그 협약에 반하는 노동법 입법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된다면 어찌되는 것인가. 그때 가서는 “바이든의 승리는 미국 노동운동의 승리”라고는 간단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미국노총이 바이든의 당선을 환영하고 있는 것은 장차 바이든이 공약한 대로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 기대가 무너진다면, 즉 통합을 내세운 바이든이 그 공약 추진을 저버린다면 바이든의 승리는 미국 노동운동의 승리가 아니었다고 규탄해야 마땅할 것인데, 그날이 올 것인가. 그것은 단순히 바이든에 달려 있지 않다. 미국노총 등 미국 노동운동이 얼마나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투쟁할 것인지에도 달려 있다. 한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는 노동운동과 무관할 수가 없다. 노동운동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고, 한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는 노동운동의 성취를 말해 준다. 노동자 단결을 위한 노동법의 수준은 결국 그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 얼마나, 어떻게 행동해 왔던 것인지를 말해 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노동자 단결보호법(PRO Act)이 입법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것을 관철할 정도의 실력이 미국 노동운동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이 나라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지난 촛불대선에서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정책 공약 중에서 무엇이 이행되고, 무엇이 이행되지 않았을까. 문재인의 승리는 이 나라 노동운동의 승리였던가.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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