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공무직노조

경찰서 교통계에서 일하는 공무직 A씨는 CCTV를 열람해 도로교통법 위반 사항을 적발하고, 범칙금을 부과한다. 또 다른 공무직 B씨는 범죄기록을 조회해 공직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에게 발송한다. 둘 다 필수 경찰사무지만 A씨와 B씨는 사실 업무를 수행할 권한이 없다. 민간인인 공무직이기 때문이다. 공무직이 이 같은 업무를 담당할 법적 근거도 없는 상태다. A씨와 B씨가 발송한 범칙금 통고나 범죄기록사실조회가 모두 효력이 없는 셈이다.

대외적으로 ‘주무관’ 실제로는 ‘민간인’

9일 공공운수노조 국가공무직지부(지부장 이경민)에 따르면 경찰법과 경찰공무원법 등 경찰 관계법령 어디에도 민간인인 경찰 공무직에게 경찰사무를 위임·위탁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경민 지부장은 “경찰 공무직은 대외적으로 주무관이라는 직급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경찰로부터 어떠한 권한도 위임받지 못한 민간인”이라며 “하루에도 여러 차례 교통 관련 범칙금 부과에 항의하는 민원전화가 쏟아지지만 대응할 법적 근거가 없어 속수무책이다”고 말했다.

경찰 공무직은 일선 경찰서와 경찰청·지방경찰청 등에서 전반적인 경찰사무를 담당한다. 범죄자의 전과를 조회하거나 수배 전단을 보내고, 각종 고소·고발에 대한 행정업무를 한다. 운전면허 정지와 취소를 비롯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압류 통고를 내리는 등 행정처분도 경찰 공무직의 몫이다. 경찰청의 지휘·감독을 받지만 경찰사무의 필요에 따라 사업예산을 받아 고용하는 형태다. 전국적으로 3천여명이 경찰 공무직으로 일한다.

경찰에 준하는 사무를 담당하다 보니 항의하는 시민과 갈등을 빚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어 속앓이만 한다. 일부 민원인은 대놓고 “네가 뭔데 나에게 범칙금을 부과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 이 지부장은 “민원인이 경찰에게 과도하게 항의하거나 공무를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성립하지만, 경찰 공무직은 민간인이라 막무가내”라며 “경찰 공무직이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일부 민원인이 괴롭히거나 생트집을 잡는다”고 호소했다.

2018년 대법원 “민간인의 주·정차 단속, 효력 없다”

실제 2018년 대법원은 주·정차 단속을 한 공무직 단속요원의 단속은 법적 효력이 없다며 처리한 업무를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지부장은 “법제처 해석을 받아 보니 경찰 공무직이 부과한 과태료도 소멸시효 5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모두 반환해야 한다”며 “경찰 공무직의 원활하고 정당한 업무수행을 위해 명확한 경찰업무의 공적 권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재홍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관계법에 민간인인 노동자에게 경찰사무를 위임할 규정이 없다면 명백한 법 위법”이라며 “조속히 법 개정을 통해 결점을 치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업무를 하다 보니 이들의 처우와 고용도 불안정하다. 최근 정부가 자치경찰제 도입을 논의하면서 생활안전·교통·경비·수사 등 업무를 자치경찰로 이관하고, 예산 편성·집행 권한을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부여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각 사업비 예산에서 인건비를 받는 경찰 공무직은 17개 광역자치단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처우가 하락할 여지가 크다. 사업 폐지에 따라 해고까지 당할 수 있다. 이런 우려가 커지자 경찰청은 경찰 공무직에 대한 예산 편성·집행 권한을 경찰청이 계속 유지하기로 했는데, 자치경찰 사업 권한은 지자체에 넘기기로 해 사업축소에 따른 해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경찰청의 입장은 다르다. 경찰청 관계자는 “도로교통법상 단속업무를 지방관서에 위임하고 있어 경찰관을 비롯한 경찰 공무직이 담당할 수 있고,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경찰청 내부 규정 등에서 경찰 공무직의 업무를 경찰관과 동등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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