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내수 침체와 수입차 공세로 국내 상용차산업이 막다른 길로 내몰리고 있다. 국내 중대형 상용차(트럭 2.5톤·버스 16인승 이상) 95%를 생산하는 전북지역 노동자들은 “더 늦기 전에 국가 차원에서 상용차산업 생존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과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악몽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사정협의체를 만들고, 상용차부터 미래차로 전환을 서두르자”고 제안했다.

3일 오후 민주노총 전북본부와 안호영·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사업 계획에 전기차·수소차 등 그린 모빌리티 보급 확대와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지원 사업이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미흡하다”며 “코로나19로 더 힘들어진 상용차산업을 위해 그린 상용차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2015년 디젤차량 배기가스 규제 강화 후
수입차 시험 무대된 국내 상용차 시장


2000년까지 국내 트럭 시장은 현대자동차와 타타대우상용차 같은 국산브랜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수입차 시장점유율은 2010년만 해도 6.9%에 머물렀다. 그런데 유럽차의 강세와 중국차의 추격으로 지난해 수입차 점유율은 27.9%까지 치솟았다.

본부는 2015년 한국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디젤차량 배기가스 규제를 대폭 강화한 유로6 환경규제를 적용하면서 수입차 시장 진출이 본격화한 것으로 분석했다. 수입차들은 주력모델에 유로6를 적용해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했는데 국내 업체들은 생산유예 조항에 의존, 유로5를 과잉생산한 뒤, 유로6가 적용됐을 때는 유로5 차종을 할인 판매하는 전략을 취했다. 판매량은 반짝 늘었지만 결국 유로6 수입 차종에 밀려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유로6 적용 이후 국내 시장은 유럽 브랜드 수입차의 아시아시장 가늠터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지난해 10월 현재 4.5톤 이상 중대형 카고트럭과 트랙터, 2.5톤 이상 덤프트럭을 합친 국내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72.1%로 2015년보다 5%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타타대우상용차가 2015년 27%에서 2019년 16.9%로 10%포인트 가량 줄었다. 볼보·스카니아·만·벤츠·이베코 등 5개 수입업체 점유율은 같은 기간 23.1%에서 27.9%로 5%포인트 상승했다.

중대형 트럭시장은 대략 4년 주기로 수요의 상승과 하락이 반복한다. 2015년 유로6 적용 이후 2019~2020년 상승곡선을 타야 하는데 국내 건설경기 악화와 코로나19로 화물·건설기계 노동자의 구매력이 얼어붙어 버렸다.

구조조정 한파 불어닥친 상용차공장
“상용차산업 위기, 전북만의 문제 아니다”


올해 현대차 전주공장 조합원수는 4천366명으로 지난 8년간 1천547명이 줄어든 상황이다. 2018년 전주공장 인력 300명을 울산공장과 기아차로 전환배치한 데 이어 올해도 100명을 전환배치 하는 방안을 노사가 협의 중이다. 주인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전주공장위원회 의장은 "전주공장 손익분기점이 5만1천대인데 내년 생산물량은 3만8천대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회계연도에 사상최대 적자(650억원)을 기록한 타타대우의 경우 올해만 200여명이 희망퇴직 했다. 현재 노동자 수는 1천240명이다.

전북지역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주인구 의장은 “현대차는 25년간 상용차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았고, 유럽과 미국 선진시장 수출 역시 단 한대도 없었다”며 “지금까지 4차례 전주공장 별도 노사합의를 했지만 지켜진 적이 없고, 지난해도 연말까지 수소트럭, 자율주행트럭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라고 비판했다. 현대차는 수소트럭 시장을 노린다는 전략이지만 수소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까지는 앞으로 5년 이상 시간이 필요해 지금 당장 인력 구조조정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차상운 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그린뉴딜 사업 중 상용차 부분이라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상용차산업 위기 극복과 고용안정을 위해 전북에서 노사정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차 지회장은 “노조가 해야 할 몫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며 “타타대우상용차지회와 현대차 전주공장위원회가 손 맞잡은 것처럼 대화와 화합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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