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통(通)한다는 말은 참 좋은 말이다. 반면에 불통(不通)이라는 말은 답답함을 안겨 준다. 표준국어대사전이 ‘통(通)’과 관련해서 특별한 낱말 하나를 올려 뒀다.

순순통(純純通) : 예전에, 서당에서 시험을 칠 때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내용이 뛰어난 최고 등급의 성적을 이르던 말.

최고 등급이면 그 아래 등급도 있지 않을까 궁금했지만, 그보다도 ‘순순통’이라는 말 자체가 쓰인 사례를 찾기 어려워서 난감했다. 그러다 알아낸 게 조선시대에 강경과나 임금 앞에서 치르는 전강(殿講) 시험을 볼 때 성적에 따라 등급을 나눠 매겼다는 사실이다. 순(純)·통(通)·조(粗)·약(略)·불(不)의 다섯 등급이나 순통(純通)·순조(純粗)·순략(純略)·불통(不通)의 네 등급으로 매겼다.

다섯으로 분류한 등급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모두 표제어로 나온다. 그런데 네 등급으로 나눴을 때 지칭하던 용어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순통(純通)이 다음과 같은 풀이를 달고 표제어로 올라 있을 뿐이다.

순통(純通) : 책을 외고 그 내용에 통달함.

시험을 통과한 등급에 대한 내용은 없다. 네 등급으로 나눴을 때의 용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런 용어가 쓰이지 않았다면 모르되 엄연히 사용됐으며, 그런 사실은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소학(小學)>에 대한 고강(考講)은 으레 한 책당 다섯 곳을 시험 보이므로 <소학> 네 책을 합해 계산하면 모두 스무 곳입니다. 여기에서 순통(純通)을 받으면 당연히 40점이 되고 순략(純略)을 받으면 당연히 20점이 되며 순조(純粗)를 맞으면 당연히 10점이 됩니다. 네 책에서 순조를 맞은 자는 입격자 속에 끼이지 않아야 할 듯한데도 그중에는 간혹 10점도 채 차지 않는 자가 끼어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한 곳씩 불통(不通)한 대목이 있거나 혹 스무 곳을 다 채우지 못한 자일 것인데 매우 타당치 못한 일입니다.(효종실록 19권)

네 등급을 가리키는 용어가 모두 나온다.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 초기에는 다섯 등급으로 나눴다가 후에 네 등급으로 나눴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용어들은 본래 조정에서 치르던 시험에 사용하던 것이었으나, 점차 서원이나 향교·서당 등에서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 서원에는 통강록(通講錄)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생활기록부나 성적표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학생들의 출결 상황과 시험을 친 결과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리고 시험 결과에 대한 기록은 위에 나온 용어들을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순순통(純純通)이라는 등급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찾기 힘들다. ‘순순통’의 풀이에서 임금 앞에서 치르는 전강이나 서원·향교 등에서 치르는 시험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대신 서당만 언급했다. 그런 것으로 봐 정식 등급이라기보다는 서당 훈장이 학동에게 순통보다도 잘했다는 식으로 추어주기 위해 사용한 말이 아닐까 짐작해 보기도 하지만 실제 그랬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끝으로 ‘불통(不通)’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를 보자.

불통(不通) : 길, 다리, 철도, 전화, 전신 따위가 서로 통하지 아니함.

과거시험 등급에 대한 설명은 없다 쳐도 달랑 저런 뜻만 올려 두면 되는 걸까. 예전에는 ‘글이나 말을 몰라 통하지 아니함’이라는 뜻을 지닌 북한어라는 풀이가 하나 더 달려 있었다. 그러다 지금은 그런 풀이를 <우리말샘>으로 옮겨 놓았다. 북한어라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불통’의 예문에 ‘대화가 불통이다.’를 올려둔 건 또 무어란 말인가.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풀이는 이렇다.

불통(不通) : 1. 회선(回線)이나 연락선(連絡線)이 끊겨 전기, 전신(電信), 서신(書信)이 통하지 않음. 2. 도로나 철로 따위가 파손되거나 막혀 교통수단이 왕래하지 못함. 3.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견해 따위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에게 시험 성적을 매긴다면 순통(純通)·순조(純粗)·순략(純略)·불통(不通) 중 무엇을 줘야 할까?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