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란 공인노무사(인천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청소년 노동인권상담과 권리구제지원 업무를 시작한 지 이제 11개월 차. 제일 어려운 일은 ‘일하는 청소년 찾기’다. 초반에는 ‘청소년은 SNS에 익숙하니까 필요하면 상담 카톡으로 연락을 주겠지’하고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었다. 청소년들이 SNS를 편하게 이용하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거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걸, 상담계정을 모를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집착하기, 노력하기, 괴로워하기

그래서 노동인권교육이 있는 날에는 학교로 찾아가서 상담이 필요한 학생들을 만났다. 상담을 하고 “못 받은 돈 받을 수 있다. 다시 연락 달라”며 명함을 주고 뿌듯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왔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몰라서 그대로 연락이 두절됐다. 그 이후로는 집착하듯 청소년들의 연락처를 받아 왔다. 연락이 끊기면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로 시작하는 카톡을 보냈다. 그렇게 다시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답장이 오지 않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괜히 어설프게 아는 척을 했다가 민망한 적도 있었다. 배달대행하는 청소년에게 “요즘 씨티(오토바이) 타요?”라고 말을 건넸다가 “아니요. 선생님, 요즘 누가 씨티를 타요”라는 답을 받아 굉장히 당황했다. (집 앞 피자가게 오토바이는 전부 다 씨티고 도로에 많은 것도 봤는데.)

상담 중에 내가 “임금체불이에요”라고 하자 청소년이 “임금체불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내가 쓰는 용어를 한 번씩 돌아봤다. 밤 10시 이후 또는 새벽에만 오는 카톡을 보며 “나는 저 나이 때 어떤 청소년이었을까”라고 생각하며 ‘예의’를 따지기도 했다. 나름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서 청소년을 만나는 일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청소년을 잘 모르겠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려웠다.

뒤죽박죽에 장시간·야간노동

이런 과정을 거쳐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놀랐던 것은 노동시간이 너무 뒤죽박죽이라는 점이었다. 출·퇴근시간, 1일 근무시간, 1주 근무일수의 변동이 심했다. 눈으로 대충 보고 평균을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가 많았다. 상담일지에 ‘1일 근무시간 : 2시간~7.5시간’으로 기록할 때면 이게 뭔가 싶었다. 아마 당사자가 더 황당하지 않을까. 조기퇴근하거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스케줄에 따라 근무하느라, 브레이크타임을 포함해 중간에 4시간의 휴게시간을 두고 피크타임에만 일하기도 했다.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약속했던 출근일과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인 노동자도 마찬가지지만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 특히 노동시간에 대한 결정권이 너무 한 쪽에 몰려 있다. 청소년 대다수가 단시간 노동자임에도 ‘근로일 및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반영한 근로계약서가 아닌 표준근로계약서를 쓰고 있다. 근로계약서가 있어도 그때그때 근로시간이 바뀌기 때문에 사전에 당사자가 결정한다는 ‘소정근로시간’의 의미가 애매해진다.

‘학교를 다니니까’라는 생각에 막연히 청소년 노동자는 야간노동이나 장시간노동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학교 끝나고 저녁시간에 출근하는 경우, 마감시간에 맞춰 새벽에 퇴근하거나 새벽 내내 근무하기도 한다. 야간노동에는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다. 보통 24시간 편의점이나 무한리필 고깃집 등에서 야간노동을 많이 하는데 연소근로자임에도 고용노동부로부터 야간노동을 인가받아 일하는 경우는 아직 못 봤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연장근로를 포함해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최대 노동시간을 1일 8시간, 1주 4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주말 또는 방학 기간의 경우, 1일 노동시간이 8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1일 14시간 근무도 봤다. 보통 밥 먹는 시간 10분 정도 빼고는 휴게시간이 없다. 근무시간이 너무 짧으면 휴게시간에 쉬는 것보다 일하고 싶다고 하지만,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 ‘쉬어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는 듯 너무 쉬고 싶어 했다.

무엇이 필요할까

“눈치 보여서 화장실을 못 간다” “(밥 못 먹고 일하면) 배가 고파서 속이 쓰리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좀 우울하다. 일하는 청소년이 권리를 주장하거나 퇴사하면 사용자가 “끝까지 가보자” “손해배상 해라” “영업방해로 소송 걸겠다” “너로 인해 청소년 알바는 안 쓰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툭 던지는 걸 볼 때도 그렇다.

두려움과 걱정에 권리 찾기를 포기하는 사례들, 뒤죽박죽 근로시간과 두 자리수의 노동시간을 보며 일터가 ‘지금’ 바뀌는 것, 일터에서 노동자가 힘을 가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하는 청소년이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늘 그랬듯이 일희일비하고 있지만, 반복하는 ‘노동자 찾기-집착하고 노력하기-괴로워하기’에 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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