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청년유니온 조직팀장

친구들에게 청년유니온을 영업할 때 나는 주로 “너가 어디를 가서 일하더라도 가입 가능한 노동조합이며, 노동자로서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 너의 편이 돼 줄 든든한 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내가 조합원이었을 때 느꼈던 장점이기도 했고 노조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런 나의 실적은 그닥 좋은 건 아니어서 셀링포인트가 약간 어긋난 걸까 싶기도 하다.

여느 노조가 그렇듯,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조를 찾아오면 당사자를 중심으로 사업장 또는 업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힘을 얻는다. 청년유니온에서도 그런 사례들이 계속 있어 왔고 최근에는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사업이 그렇다. 주로는 업계의 문제를 건드리는 일을 해 왔다고 인식되지만, 조합원이 일하는 사업장 문제를 해결하는 분쟁대응도 있었다.

서울바이오허브의 시설관리를 하던 조합원이 직장내 괴롭힘 건으로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런데 조합원이 가져온 근로계약서는 3개월짜리였고 갱신기대권이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그는 서울바이오허브에서 이미 1년 넘게 일해 오고 있었다. 새로운 용역업체로 바뀌는 과정에서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했다. 우리는 핵심 문제를 고용안정과 직장내 괴롭힘으로 잡고 대응했다. 서울바이오허브측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대신 용역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용역업체는 피해 조합원을 붙잡고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해 가며 정말 “전형적이다” 싶을 정도의 ‘조용히 넘어가기’를 시전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자 회사측에서는 피해 조합원을 포함해 법률대응 또는 회사에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거나, 직장내 괴롭힘 조사 때 피해 조합원의 편에 선 5명을 ‘인사평가 점수 미달’로 계약 만료시켰다.

해당 용역업체는 서울시 위탁기관(서울바이오허브)의 시설관리를 1년 넘게 해 왔다. 그런데 새로운 위탁회사가 와선 “우리 회사와 잘 맞는지 알아 가는 시간을 가지겠다”며 3개월 계약을 했다. 업무변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업장을 더 잘 아는 것은 1년 넘게 일해 온 노동자인데, 이제 막 사업장에 온 회사가 평가하고 자르는 것이 갑을관계다. 그 와중에 직장내 괴롭힘 조사와 인사평가는 함께 진행됐다. 직장내 괴롭힘을 본 적 있다고 말한 직원에게는 녹음할 것이라며, 발언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있겠냐는 질문을 했다.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가 좋은 인사평가를 받고 피해자는 쫓겨나는, 민간기업에서도 흉흉하다 할 문제의 회사가 서울시의 돈을 받고 있다.

실제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은 언제, 어떻게 청년유니온을 든든한 백으로 여길까. 모두 각자의 이유가 다르겠지만, 분쟁 대응을 진행하며 떠오른 장면들이 있었다. 청년유니온을 노조보다는 시민단체로 인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노조로서의 청년유니온은 분명 일반적인 노조가 다가서기 어려운 환경의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구체적인 노동현장의 문제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은 현실적인 투쟁이었다. 안전한 울타리로서의 노조 역할도 해야 했다.

서울시에 보낼 ‘문제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받았다. 계약 만료 전까지 짧은 기간 진행돼야 하기에 주로 조합원들에게 요청했다. 모두 이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줬다. 당연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서울시 앞에서 기자회견 후 나간 기사에는 피해자를 욕되게 하는 수 많은 댓글이 달렸다. 새삼 놀라웠다. 아직도 직장에서 외모를 평가당하고 욕먹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이었다. 하긴 그런 세상이었기에 일어난 일이기도 할 것이다. 노조에서 집행부로서 불합리한 상황에 맞서는 일을 하면서도 늘 같은 편에 선 동료들과 함께 하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함께 분노하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노조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새긴다. 노동자의 편이 될 것, 약자에 연대할 것, 안전한 울타리를 지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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