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기사는 시작부터 차별을 내재했다. 기사는 한 택배회사 사무직 정규직이 일손이 부족해 월 3~4회 본래의 업무가 아닌 상·하차 작업에 투입된다는 사례로부터 시작했다. 사무직이 상·하차 작업을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월 3~4회 한다고 했으니 고작 1주일에 한 번 꼴도 안 된다. 그런데도 그게 큰 문제인양 기사 첫 부분에 사례로 넣었다. 중앙일보가 지난 23일자 B2면에 보도한 ‘일손 없다는 택배 상·하차 … 외국인 근로자 쓰면 될 텐데’라는 제목의 기사 말이다.

사무직이 월 3~4회 상·하차 작업하는 걸 문제 삼은 중앙일보가 택배회사 직원도 아닌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가 매일 하루 6시간씩 상·하차 작업하는 건 왜 그동안 침묵했는지 모를 일이다. 택배기사는 그 회사 소속도 아닌데 말이다. 택배회사가 상·하차 업무를 사무직에게 시키거나 택배기사에게 무료노동을 강요해 온 게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다. 사무직이 월 3~4회 상·하차 일을 돕는 건 뉴스 가치도 없다.

기사는 상·하차 인력을 추가 채용하지 않고 일당직으로 유지하는 택배회사엔 결코 비난의 화살을 겨누지 않았다. 오히려 상·하차 작업의 알바비는 최저임금보다 시간당 2천원가량 높다며 힘든 일을 외면하는 노동자를 은근히 비난하는 투다. 이렇게 힘든 일이라면 돈을 더 줘서라도 채용을 늘리면 그만이다. 실제 CJ대한통운은 택배노동자의 잇단 과로사 의심 사망에 사과하면서 당장 다음달부터 4천명의 상·하차 인력을 더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기사는 힘든 일이라 알바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 쓰면 된다’는 논리를 편다. 이 기자에게 ‘외국인’ 말고 ‘이주’가 옳은 표현이라는 지적은 쇠귀에 경 읽기 같아서 놔두더라도, 우리에게 힘든 일이면 그들에게도 힘든 일이라는 상식쯤은 알려주고 싶다.

기사는 “내국인들이 꺼려 일손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익명을 원한 택배업계 관계자의 말을 빌려 왔다. 기사는 사무직과 현장직, 정규직과 특수고용직으로 나누는 편견과 차별에서 출발해 이주노동자로 향한 차별과 배제로 곧장 나아갔다.

기사는 이주노동자를 택배현장에 투입하지 못하는 걸 ‘불필요한 규제’라 지적하며 규제개혁의 전도사로 나섰다. 그 다음엔 1.5톤 이하 트럭으로만 택배배달이 가능한 번호판을 주는 현행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도 불필요한 규제라고 지적한다. 기사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2.5톤까지 택배배달을 허용하는 개정법을 발의한 사실도 소개했다. 오랜 염원을 이렇게 용감하게 말하는 국민의힘 의원과 맞장구치는 언론이 있으니 택배회사는 참 좋겠다.

몇 년 전 화물연대가 운수사업자마다 서로 다른 차량 크기 기준을 놓고 정부와 줄다리기할 때 아무리 설명해도 복잡하게 얽힌 기준을 이해하는 기자들이 없었다. 그래서 화물연대가 파업을 예고했는데도, 언론은 왜 파업하는지 제대로 쓰지 못했다. 고육지책으로 화물연대는 기자들을 불러 놓고 간담회를 열어 이를 2시간이나 설명해야 했다. 그만큼 복잡한 문제를 이토록 쉽게 2.5톤까지 허용하자고 기사로 쓰는 건 용감하다. 언론은 내용을 반만 알 때 가장 용감하게 기사를 쓴다.

간선 택배가 아니라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물품을 배달하는 차량은 주택가 좁은 골목길까지 들어간다. 나는 1.5톤 탑차로도 경사진 골목길에선 아찔한 순간을 많이 경험했다. 탑차는 백미러도 없어 후진할 땐 곤혹스럽다. 이걸 2.5톤까지 허용하면 주택가 교통사고 폭증은 누가 책임질 건가.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라 사고시 책임도 오롯이 혼자 져야 한다. 잘못된 기사는 때론 흉기가 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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