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끝나고 이제 바야흐로 ‘입법의 시간’이 시작됐다.

내년 국회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 올 정기국회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입법을 성사시킬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서”라며 제출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뤄질지도 관심사이다. 지난 21일, 노동부 주최로 열린 노조법 개정 관련 노사정 토론회에서 이재갑 장관은 “정부 입법안은 결사의 자유의 핵심 내용은 보장하면서, 우리 기업별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하고자 깊이 고심한 결과물”이라며 향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조속한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정부 법안에 대해 민주노총·한국노총뿐 아니라 노동법률단체들도 “역대급 노동개악”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다면, ILO의 결사의 자유,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에 위배되는 사업장 내 조합활동권 제한, 사업장 내 쟁의행위의 전면적 금지 규정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ILO가 한국 정부에 직접 권고해 온 노조 설립신고제 개선,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조치들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ILO뿐만 아니라 EU측이 콕 집어서 법 개정을 요구해 온,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입법·행정 조치는 의도적으로 누락돼 있다. 노조법 2조의 ‘근로자’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해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경로마저 봉쇄해 버린 것에 대한 개선조치는 정부 법안에 전무하다.

이에 관한 정부의 변명은 2018년 이후 대법원이 노조법의 ‘근로자’를 조금 넓게 인정하는 추세이니, 정부도 판례에 따라 노조 인정 업무를 처리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기만에 가깝다. 이미 2004년 대법원은 실업자와 구직 중인 사람도 노조법의 근로자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노동부는 실업자·구직자 등이 포함돼 있다는 구실로 청년유니온·기간제교사노조 등의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2018년 대법원이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이후에도 대리운전기사·방과후 교사·경륜선수 등을 조직한 노조들은 설립신고서를 받기 위해 수년간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보험설계사·기간제교사 등은 아직도 설립신고서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 시절 노동부가 건설노조·공공운수노조(화물연대)에 특수고용직 조합원을 노조에서 내보내라고 통보한 ‘자율시정명령’은, ILO의 직접적 권고에도 아직도 철회되지 않고 남아 있다.

보다 근본적 문제는 현행 노조법과 노조 설립신고제는 ILO가 지속적으로 지적한 바와 같이 노조설립에 대한 사전허가제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설립신고증을 받지 못하거나 ‘노조법상 노조 아님’ 통보를 받게 되면, 단지 노조로서의 법적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조합원들의 조합활동은 각종 규정·지시 위반으로 징계대상이 되고, 단체교섭 요구는 업무방해·불법 집단행동이 된다. 징계·계약해지·형사처벌과 거액의 민사 손해배상청구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는 우리 노조법이 헌법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실현하는 법령이 아니라, ‘노조 금지법’으로 기능해 온 역사와 연결된 문제다. 우리 노조법은 노조법의 근로자로 인정돼야만 노동 3권이 인정되고, 노조법의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노조활동 자체가 민·형사상 제재를 받게 되는, ‘노동 3권 허가제’로 짜여 있다. 반면 우리보다 노동권 보장 실태가 나은 많은 국가에는 노조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조할 권리’는 ‘결사의 자유’, 즉 노동자 자유의 영역이기에 어떤 노동자만 노조를 할 수 있다는 법규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노·사간 교섭력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단체교섭을 촉진하거나,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개별 법령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실상 노동 3권 허가제인 현행 노조법 자체를 없애는 것이 우리의 ‘노조 금지법’을 철폐하는 방향에 더욱 부합할 수도 있다. 거기까지 갈 수 없으니 최소한 노조할 사람의 자격 제한만이라도 풀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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