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예나 지금이나 세금은 원성의 대상이다.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인다는 뜻을 지닌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한자 성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겼겠는가. 정당하게 부과하는 세금도 내고 싶지 않은데 하물며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명목으로 세금을 내라고 하면 반발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일제 강점기에도 다양한 세금을 부과했는데, 특이하다고 여길 만한 세금 종류가 국어사전에 등장한다.

골패세(骨牌稅) : <법률> 예전에, 골패·화투·마작 따위에 매기던 물품세. 일제 강점기에 골패세령으로 시작하여 1950년에 물품세법에 흡수되었다.

골패세는 1931년에 신설됐으며, 해방 후에도 한동안 존속했다. 애초 일본에서 1902년에 먼저 만들어 실시했는데, 그로 인해 화투 판매량이 뚝 떨어지자 조선으로 대량 수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건너온 화투와 중국에서 건너온 마작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며 도박이 성행했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는 얘기다. 그런 상황에서 골패세를 도입한 건, 도박을 줄여보겠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세수를 늘리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으리란 것 역시 분명했다.

골패세가 도박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표면적인 명분을 내세웠다면 다음 세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조흥세(助興稅) : 일제 강점기에, 기생이 받는 사례금에 경성부에서 부과하던 세금.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는 기존에 있던 기생조합 대신 자신들의 방식대로 권번(券番)을 만들어 모든 기생들이 그곳에 적을 두도록 했다. 권번은 기생을 양성하는 동시에 기생이 요정에 나가는 걸 감독하고, 화대(花代)를 받아 주는 역할을 했다. 기생은 명월관 같은 요정에 나가면 자신들이 보낸 시간만큼 계산해서 놀음차 혹은 화채(花債)라고 하는 일종의 봉사료를 사례금으로 받았다. 그 돈에 대해 세금을 매기겠다는 게 조흥세로, 1920년 6월에 공고해 7월1일부터 시행했다.

그 전에 경성부는 미리 기생들의 화채를 인상했다. 화채를 올리면 당연히 기생들에게 유리할 것 같았지만 기생들은 오히려 손님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반대했다. 더구나 화채 인상은 곧이어 실시할 조흥세를 더 걷기 위한 사전 조치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자 기생들은 화채 인상이 기생들을 위한다는 건 허울뿐이며, 그로 인해 손님은 줄고 조흥세라는 세금까지 내게 됐으니 다시 화채를 인하하라며 경성부에 진정서를 내며 반발했다. 동시에 파업, 즉 요정에 나가지 않는 실력 행사를 통해 조흥세를 기생이 아닌 유흥업소의 업주가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되자 유흥업주들이 조흥세에 해당하는 몫을 손님들에게 전가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고, 그로 인해 크고 작은 시비가 벌어지곤 했다.

경성부에서 시작된 조흥세는 다른 도시들로 퍼져갔으며, 1930년대 후반까지 조흥세 문제가 당시의 신문기사에 자주 오르내렸다. 조흥세와 관련해 재미있는 기사 하나 소개한다.

“대구부 재무과에서는 하서정(下西町)에 있는 금호관(琴湖館)이란 요리집의 체납된 조흥세 7백여원을 증수하기 위하야 동 요리점에 외상을 지고 잇는 약 20여 명의 손님에게 채권차압을 단행하엿다고 한다.

차압을 당한 사람들은 모다 상당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인데 요리점이나 부당국자로부터 하등의 독촉 한 번도 없이 돌연히 차압만 단행하여 일반의 요리점을 타매하며 동시에 부당국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다.”(1935년 5월28일자 동아일보)

기사 제목이 ‘요정의 조흥세 때문에 단골손님들이 봉변’이라고 돼 있다. 금호관이라는 요리점이 일부러 체납했는지, 세금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경영이 어려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로 인해 차압을 당한 단골손님들이 뜻밖의 봉변을 당한 건 분명해 보인다. 물론 외상을 지고 갚지 않은 그들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시에 요정이나 요리점 업주들은 조흥세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조흥세 폐지에 대한 요구도 많았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흥세는 해방 후에 유흥세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정확한 명칭은 유흥음식세였으며, 지금은 사라졌으나 국어사전 표제어에 이름을 올려 두고 있다.

유흥세(遊興稅) : <법률> 요릿집·음식점·호텔·무도장 따위에서의 유흥이나 음식 행위에 대하여 부과하던 간접세. 1977년에 부가 가치세법의 시행에 따라 폐지되었다.

박일환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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