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수지 공인노무사(노무사사무소 약속)

시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고 김규동 원로시인은 “가슴에 뭔가 이리도 넘쳐서 어쩔 도리 없을 때 시라는 물건을 그적거려 본다”고 답했다.

아래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시’가 무엇인지 고민해 봤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가슴에 뭔가 이리도 넘쳐서 어쩔 도리 없을 때 그적거리는 것”이 ‘시’일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 본다.

(중략)

하루는 삶에 너무도 지쳐서/ 내가 말했어요/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과 결핍을/ 해결해주셨어요/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이제는 나를 죽게 해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알았어/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 그 일들을 모두 끝내도록 해라/ 그리고 내일 죽으렴!

- 뻐라짓 뽀무 외 34명,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삶창, 2020) 中 러메스, ‘고용’의 일부

시의 일부나마 읽고 어지러운 생각이 든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시 ‘고용’은 건강하지 않은 ‘고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했던 네팔노동자들이 한국에서의 노동과 삶에 대해서 지은 시들을 모은 시집이다. 시집의 시들에는 ‘기계’ ‘죽음’ 이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위 ‘고용’을 쓴 시인 러메스 역시 네팔 이주노동자로 농업노동자였다. 현재는 본국으로 귀국했다. 시 전문 앞부분에서 시인은 사장을 ‘굶주림과 결핍의 신’이라고도 부른다. 낯선 땅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사용자는 사실상 ‘신’과 같은 존재다.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열악하고 위법한 노동조건에 더 쉽게 노출돼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강제노동이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국내 사업장에서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사업장 변경 제한’을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는 최초의 근로개시를 한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사업장의 휴·폐업, 임금체불 등으로 정상적인 근로관계 지속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외국인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 보장을 위해 예외적으로 사업장 이동을 최대 3회까지 허용한다.

이주노동자가 회사를 옮기기 위해서는 임금이 체불되거나 폭행을 당하거나 사업장이 휴·폐업되는 등의 상황이 돼야만 하는 것인데, 이 역시 노동자가 입증해야만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동이 어려운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사실상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위의 이유들을 입증해내지 못하는 이상, 또는 그 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 이주노동자가 힘든 노동 또는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원하거나 ‘도망’간다면 그는 곧바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위험에 처한다. 사용자가 퇴사를 원하는 노동자에게 이를 가지고 협박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진정을 대리하면 정말 많은 사용자가 배신감을 토로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나도 불법체류자로 신고할 겁니다.”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한국인처럼 돈 줄 거면 외국인을 왜 씁니까?” 이 말들이 얼마나 폭력적인가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지면을 달리해 이야기하고 싶다. 분명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선택은 분명 그 노동자 자신이 했다. 우리나라에서 위법적인 지위를 가진 외국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말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상황이 그들을 그런 선택으로 내모는지에 대해서도 분명 같이 이야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만은 강조하고 싶다.

큰 틀에서 보면 사회는 오히려 그들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당장 우리네 식탁만 해도 이주노동자들이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어업과 같은 1차 산업과 제조업은 이미 이주노동자 없이 굴러갈 수 없는 상태다. 이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이 차질을 겪으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올해 4천917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계절근로자로 한국 농촌에 들어오기로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항공권 가격, 자가격리 비용 부담 때문에 입국하지 못했다. 당장 농번기인 농촌은 난리가 났다.

이에 경북 영양군은 자가격리 비용을 농가와 지자체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베트남에서 308명의 노동자들을 투입했다. 포항시는 법무부의 ‘코로나 대비 취업기간 만료 비전문취업 자격 외국인의 계절근로 한시 허용’을 처음으로 적용해 국내에 거주하는 베트남·태국 등 외국인 노동자 90명을 생산 현장에 투입하기도 했다.

노동의 연결고리에서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의 일상에 각자의 노동,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 안에서 각자의 삶은 이미 어떤 노동자와도 분리할 수 없이 연결돼 있고, 그렇다면 사회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업장 변경의 제한’을 둬 외국인 노동자를 노동시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동력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가 건강한 근로계약관계를 가지도록 이끄는 것은 여전히 국가와 사회의 의무다.

적어도 어떤 노동자가 열악하고 폭력적인 노동조건에서 ‘합법적으로’ 도망칠 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최우선적 과제다. 이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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