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택배노조가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로젠택배의 갑질 피해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고 김 모 택배노동자를 추모하고 택배업체와 택배기사 간 불공정계약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을 로젠택배와 정부에 촉구했다. <정기훈 기자>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 죽음이 잇따르자 CJ대한통운에 이어 한진택배와 롯데택배가 대책을 내놓았다.

롯데택배는 26일 오전 분류작업 지원인력 1천명 투입 등의 내용을 담은 ‘택배기사 보호를 위한 종합대책’을 공개했다. 이날 한진택배도 11월1일부터 오후 10시 이후 심야 배송을 중단하는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미처 배송하지 못한 물량은 다음날로 미뤄 근로강도를 조절하겠다는 내용이다.

노동계는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실현 가능성에는 의심을 품는다. 택배노동자 과로 근본 원인인 고용불안 해소와 낮은 수수료를 개선할 방법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한계다. 택배노동자는 특수고용직으로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산다. 물량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다음날 배송 허용한 한진택배”

롯데택배와 한진택배의 대책은 큰 틀에서 같다. ‘보호’ ‘과로방지’라는 이름을 단 대책에는 △1천명의 분류지원 인력 투입 △2021년 택배노동자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 △매년 건강검진 실시 △터미널 등 인프라 투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지난 22일 CJ대한통운이 발표한 ‘택배종사자 보호 종합대책’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책은 한진택배의 심야배송 제한이다. 한진택배는 “화·수 집중되는 물량을 주중 다른 날로 분산해 특정일 근로강도가 편중되지 않게 하면서도 수입이 감소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선하기로 했다”며 “특히 설날·추석 물량이 급증하는 시기에는 차량과 인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숨진 한진택배 노동자 김아무개씨는 추석연휴 중 하루 420개 배송 물량을 소화하고 새벽 4시30분께 배송을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분류지원 인력 투입을 위한 비용과 1년에 한 번 실시하는 건강검진 비용은 회사가 부담한다. 또 회사는 “2021년 상반기까지 모든 택배기사가 산재보험을 100% 가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밝혔다.

롯데택배 대책 중 눈여겨볼 만한 것은 ‘적정 배송 물량 조절제’다. 전문 컨설팅기관과 택배 대리점 협의로 택배기사가 하루에 배송할 수 있는 적정량을 산출해 물량을 조절하는 방안이다. 현재 택배노동자에게 별도 물량 제한이 없다. 배송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노동자에게 물량 제한은 곧 임금 조정을 뜻해 ‘적정량’ 산출·제도 적용 과정에서 적잖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행 과정 점검 위해
민관공동위원회 구성해야”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는 “당일배송 강요 중지와 다음날 배송을 허용한 것은 그나마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의 대책 발표 후 분류인력 투입 비용을 놓고 이행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두 회사의 발표에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대책위 입장”이라고 밝혔다.

과로사대책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최근 ‘택배사는 분류인력 투입비용을 50%만 부담할 테니 나머지 50%를 대리점과 기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CJ대한통운 지사를 통해 대리점과 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22일 대책을 발표하면서 4천명의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과로사대책위는 “한진택배는 1천명의 분류인력을 투입하고 비용은 회사가 부담한다고 명시했지만 롯데는 대리점 및 기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단계적으로 투입한다는 내용으로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구체적 언급이 없다”고 꼬집었다.

과로사대책위는 “발표 내용을 누가·어떻게·언제 할 것인지 세밀하게 입안하고 과정마다 검증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택배사와 대책위,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는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하라” 촉구

택배사가 잇따라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 개선 요구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택배노동자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택배지부는 이날 오전 고용노동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노동자 장시간 고강도 노동의 핵심 해결책은 재벌 택배사의 저단가 정책을 바꾸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택배노조도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일 로젠택배 노동자 김아무개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권리금·보증금 문제를 포함해 택배노동자에게 불리한 계약서부터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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