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삼성전자 국가핵심기술 유출 방지법’을 대표발의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반도체 국가핵심기술 47건이 유출됐는데 입증이 어려워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사례를 언급하면서, 국가경제의 큰 타격을 막기 위해 ‘삼성전자 국가핵심기술 유출 방지법’을 대표발의한다는 것이다. 국가핵심기술, 그것도 삼성전자 국가핵심기술 유출 방지법을 만들겠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지난해 개정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면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도록 개정돼(9조의2), ‘국가핵심기술’이기만 하면 정보 자체를 확인하기 어렵게 된 상태다. 법 개정 당시,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을 벗어난 사용·공개행위를 처벌하는 규정도 만들어졌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확인하고자 정보공개청구를 한 사건에서,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의 공개 여부가 입법적으로 해결됐다”는 근거로 개정법이 언급되던 장면이 오버랩됐다. 산업기술보호법은 “삼성보호법”이라 불리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와 건강권,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다. 그런데 하나의 사례만을 근거로 특정기업(삼성)의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며, 적법하게 정보를 취득하더라도 ‘대상기관의 동의’가 없는 경우 처벌하도록 더욱 엄격한 내용으로 법을 개정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산업기술보호법은 산업기술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대상 기관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유출하거나, 유출한 산업기술을 사용 또는 공개하거나 3자가 사용하게 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처벌하고 있다(14조2호, 36조3항). 그런데 고 의원을 비롯한 18명의 의원은, 법 개정을 통해 여기서 나아가 “적법하게 취득한 산업기술이라도 대상기관의 동의 없이 해당 기술을 사용 및 공개하는 경우”에는 처벌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위 개정안 발의의 시발점이 됐던 ‘삼성전자 A임원’ 사건의 경우, 문제된 자료가 유출된 사실 자체는 있으나 업무에 참고하기 위해 반출한 자료라고 확인됐고, 달리 이직을 준비하면서 부정한 목적을 위해 자료를 유출한 것이 아니라고 확인돼 해당 부분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마치 법률이 미비해 처벌받지 못한 것처럼 사건 내용 자체가 왜곡돼 알려졌고, 적법한 경로로 취득한 정보라도 반드시 대상기관의 동의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위 사건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선뜻 알기 어려운 내용의 법안 발의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산업기술 보호 필요성을 확인하고 이를 통한 경쟁력 제고를 꾀하고자 하는 산업기술보호법 취지는 명확하다. 다만 관련 의무와 처벌이 법안의 핵심인 만큼, 파생되는 효과와 악용 소지에 대해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삼성의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여부가 행정심판·소송 과정에서 문제되면서 지난해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됐다. 반도체 사업장을 비롯한 첨단산업 현장에서 직업병 피해가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작업환경 유해성을 확인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보공개청구나 산업재해 관련 소송 과정에서 자료를 확보하는 것 외에는 달리 자료에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소관 정부 부처에 제출한 작업환경자료를 요구하면 삼성은 국가핵심기술과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행정심판과 소송을 통해 작업환경자료가 공개돼야 함이 확인됐다.

그러자 지난해 8월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됐다. 첨단 산업기술이 사용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경우 ‘국가핵심기술’라는 이유로 아예 공개되지 않게 됐다. 정보를 얻어 문제점이 발견된 경우에도 이에 관련된 문제제기를 하려면 처벌을 감수해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논의된 개정안에 따르면,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문제제기 대상인 해당 기관(기업)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기술보호’라는 명목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인근 주민들의 건강․안전과 관련된 자료에 대한 접근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 목소리도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렇게 현실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점점 엄격하고 구체적인 잣대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핵심기술’ ‘산업기술’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건드려서는 안 될, 무조건 보호해야 할 정보로 보이고, 관련 정보를 적법한 경로로 취득했더라도 사용하거나 공개할 때 해당 기관의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이 일응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으로 법 개정 논의가 진행된 과정을 살펴보면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떤 의도로 마련된 것인지 자꾸만 되묻게 된다. 잘못된 전제에서 시작된 이번 개정안 논의가, 부디 제 2의 ‘삼성보호법’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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