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학연구소와 국방기술품질원이 설치법상 공무원 복무규정 준용조항을 빌미로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노조 설립신고증을 내줬는데도 노조가 아니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13차례 교섭 요구도 묵살

25일 국방과학연구소노조(위원장 김철수)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노조를 만든 뒤 이달 6일까지 사측에 13차례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번번이 묵살됐다. 노조는 22일 연구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을 선포했다. 김철수 위원장은 “50년된 조직인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지난해 8월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했는데 1년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노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공공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외면한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연구소는 국방과학연구소법 14조를 근거로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 조항은 공무원 복무규정을 준용해 연구소 노동자의 노동 3권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다. 법에 따라 노동 3권이 없으니 노조 설립도 인정할 수 없고, 단체교섭에도 응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이미 노조에 설립신고증을 교부했다. 연구소 노동자는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인 점과 공무원도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에 따라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단결권·단체교섭권을 인정한 점을 고려했다.

단협체결 직전 감사원 개입으로 무산

연구소는 노동부의 이 같은 판단조차 묵살하고 있다. 감사원이 노동부의 노조 설립신고증 교부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를 두 차례 실시한 점, 국방부에서도 노동 3권을 전면 인정하는 데 이견이 있는 점 등을 들며 노조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정부 내 이견이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노동부 결정보다 소속부처인 국방부의 눈치를 보는 셈이다. 그러나 국방부 역시 연구소 노동자의 노동 3권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법 개정을 위해 협의 중”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국방기술품질원노조(위원장 김명식)는 지난해 1월 설립했다. 이 곳 노동자들 역시 설치법인 방위사업청법 60조에 따라 공무원 복무규정을 준용한다. 국방과학연구소보다는 사용자쪽이 노조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다. 지난해 9월께 노사의 책임과 향후 활동목표 등을 합의하는 기본협약 체결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감사원이 국방과학연구소노조 설립인가를 내준 노동부에 제동을 걸면서 국방기술품질원도 영향을 받았다. 김명식 위원장은 “당초 1월 설립 이후 3~5월 노동부와 법제처의 법률해석을 통해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고 교섭에 나섰다”며 “그런데 돌연 감사원이 개입해 국방과학연구소 교섭에 훼방을 놓으면서 국방기술품질원도 국방과학연구소 상황을 보자며 협약을 서명 직전에 물렀다”고 말했다.

국회 법개정 추진, 노동 3권 인정 여부 논란

이들 노조는 사용자쪽에 단체교섭 체결을 계속 요구하는 한편으로 국회의 법 개정을 기다리고 있다. 쟁점은 국방과 관련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민간인 노동자에게 노동 3권을 모두 인정하느냐다. 국방부쪽은 공무원노조처럼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노동 2권만 인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해당 기관이 법에서 정한 주요 방위산업체도 아니고, 노동자도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이기 때문에 노동 3권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한 여당 관계자는 “노동 3권을 인정하는 방향에 공감하지만 최근 국정감사를 비롯한 일정이 많았고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어 아직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