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빛나라 변호사(오빛나라 법률사무소)

정신분석에서 우울증을 ‘자신을 향한 분노’ ‘내면으로 돌려진 분노’로 이해한다.

마음 속에 쌓인 분노가 밖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억압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된다. 자기비난·책망·죄책감으로 인해 자존감에 손상을 입게 되고, 자아기능이 약화되고 우울증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직장내 괴롭힘, 인사조치 같은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으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재해자는 “상사가 질책을 하고 동료들이 비난했던 원인이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요?” “원하지 않는 인사조치가 내려진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죠?”라는 질문에 그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답을 하고는 한다.

우울증을 포함해 정신질환 산재신청 사건에서 발병·악화를 재해자 개인적 소인 탓으로 치부해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사조치의 정당성 여부와 결부시켜 판단하는 사건도 있다. 해고나 전보조치 등 인사조치가 정당했기 때문에 인사조치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더라도 정신질환은 개인 탓이라는 것이다. 상사의 질책과 비난·일방적인 인사조치가 정당했거나, 재해자가 자신의 과실을 인정했다면 우울증은 업무상재해가 아닐까.

인사조치, 상사 질책의 정당성, 재해자 개인의 취약성을 근거로 정신질환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의 무과실책임 법리에 반하는 논리다. 사업주가 행한 징계의 부당성, 사업주의 과실, 재해자의 과실은 업무상재해의 판단기준이 아니다. 비록 정당한 인사조치나 질책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업무상재해 인정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이로 인해 근로자에게 정신질환이 발병하거나 악화했다면 이는 업무상질병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업무상질병이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 여부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 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에도 반한다. 정신질환 발병·악화에는 ① 유전적 요인 ② 생화학적 요인과 ③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노동자 개인적인 취약성을 이유로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정신이 건강한 상태에서는 정신질환이 발병하지 않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건강한 보통 평균인을 기준으로 정신질환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한다면 모든 정신질환은 개인의 취약성 탓이 된다. 그 어떤 정신질환 또한 업무상재해로 인정될 수 없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최근 정신질환 산재신청 건수와 승인율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한 수는 2014년 137명(사망 47명), 2015년 165명(사망 59명), 2016년 183명(사망 58명), 2017년 213명(사망 77명), 2018년 268명(사망 95명)으로 늘었다. 이에 대한 산재승인율은 2015년 38%, 2016년 46%, 2017년 59%에서 2018년에는 75%로 높아졌다.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직장 내 권리의식이 증진됨에 따라 향후 산재신청 건수와 분쟁은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업무로 인해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재해자들이 신속하게 산재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의 무과실책임 법리 및 당사자주의를 반영해야 한다. 정신질환의 상당인과관계 판단기준을 명확하게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과 당해 근로자의 개인적인 취약성이 정신질환 발병·악화에 영향을 미친 정도의 경중을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의 취약성을 이유로 정신질환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판단 주체 성향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법적 분쟁이 증가하고 업무상질병 판단의 신속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신질환 재해자들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쟁송절차로 몰아넣는 것과 같으며, 이미 정신건강이 약해져 있는 재해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게 된다.

우울증은 사업주 과실이나 재해자 과실과 무관하게 산재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업무상질병이다. 이러한 고려 없이 우울증을 재해자 개인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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