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진행자 : ‘히스토리저널, 그땐 그랬지’. 오늘은 50년 전 2020년 10월에 많은 택배·배달노동자들이 과로로 세상을 떠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패널1 : 당시 코로나19가 전 지구를 덮치면서 많은 사람이 전염병에 감염됐습니다. 이로 인해 일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라고 해서 비대면 산업이 활기를 띠었고 말씀하신 택배·배달 물량이 많이 늘게 됐지요. 그렇게 되면서 이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과로사합니다.

패널2 : 이해가 잘 안 되는 게 있어요. 일을 하는 건 먹고 살려고 하는 건데, 어떻게 죽을 때 까지 일을 하지요?

패널1 : 당시 자료를 보면 택배노동자들은 일주일에 평균 71시간을 일했다고 해요. 점심시간은 평균 12분이었고, 그마저도 일하는 중에 빵이나 김밥으로 때웠다고 합니다.

패널3 : 그렇게 일을 시키면 법 위반 아닌가요? 100년 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지 50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똑같았나 보네요.

패널1 : 당시에 근로기준법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지 못했어요. 특히, 5명 미만 사업장 같이 정말로 법이 보호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사각지대에 있었죠. 택배노동자들의 경우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분류되면서 많은 부분에서 법 적용이 제외됐는데요. 노동시간뿐 아니라 ‘산재 적용제외 신청’이라고 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취업을 위해서 산재 적용을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패널2 : 보험료를 못 낼 정도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고용한 업체들도 열악한 곳이었나요?

패널1 : 아뇨. 당시 업체들은 이른바 대기업들이 운영하고 있었죠.

패널2·3 :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죠?

진행자 : 지금 우리가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예전에는 ‘당연한 일’들로 취급된 사례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네요. 지금까지 역대 최저로 기록되고 있는 최저임금 1.5% 인상도 그 당시 감염병 확산이 이유였어요.

지금까지 가상의 이야기였다.

며칠 전 KBS 프로그램인 <역사저널 그날>은 전태일 열사 서거 50주년을 맞이해 ‘인간선언,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를 방송했다. 전태일 열사의 삶과 당시의 노동환경, 1970년 11월13일 ‘그날’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진행자와 패널 모두 눈물을 보였다.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일을 할 수가 있었죠?” “어린 노동자들에게 각성제를 맞힐 돈이 있으면 그걸로 병원을 보냈어야죠.” “저 월급으로 어떻게 생활을 해요?”

출연자들은 질문하고, 분노했다.

함께 울컥하며 방송을 다 본 뒤, ‘50년 뒤에 사람들은 지금의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50년 전 청계천 다락방에서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수 없었던 여성노동자를 안타깝게 생각하듯이 50년 뒤의 세대들도 지금의 모습을 같은 마음으로 여길까. 생뚱맞을 수도 있는 글을 쓴 이유다.

“미래에 대한 가장 훌륭한 예언자는 과거”라고 바이런은 이야기 한다.
비극의 과거를 바꿔 내지 못한 현재는 비참한 미래의 시작이다. 오늘 우리가 ‘노동’의 이야기를 더 크게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50년 뒤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까. 지금의 우리를 미래는 ‘안타까웠던 지난날’로 이야기할까?

볕이 너무 좋은 가을, 이러저러한 상념을 뒤로 하고 딸아이 손을 잡고 전태일 기념관과 다리를 찾아야겠다.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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