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은 뒤흔든 지 8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백신도, 치료약도 없는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 유일했다. 단결과 단체교섭, 단체행동을 근간으로 하는 노동조합의 일상도 달라졌다. 매일노동뉴스가 비대면 방식으로 인한 노조활동의 변화를 살펴봤다.<공동취재팀>

15일 한국노총은 중앙위원회를 소집했다. 한국노총 규정 제·개정안과 항공노련 가입, 노동의미래위원회 기본계획, 예산 전용(안)을 심의·의결한다. 중앙위원은 모두 171명. 하지만 이들을 한곳에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1단계 조치에 따라 실내 50인·실외 100인 이상 집합·모임·행사 자제 권고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모바일투표 방식으로 이날부터 이틀간 중앙위원회를 치른다.

지난 8월27일 민주노총도 중앙위원회를 열어 하반기 ‘전태일 3법’ 쟁취를 위한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당시는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수도권 2.5단계)로 10명 이상 모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민주노총은 중앙위 개최를 위해 서울 6곳을 비롯해 전국 21곳에 회의장을 마련했다. 산별연맹별·지역본부별로 회의장소를 분산한 뒤, 이를 화상으로 연결하는 온라인 화상회의 방식으로 중앙위원회를 진행한 것이다.

온라인 선거시스템(K보팅) 활용 노조 3년 새 4배 이상 증가

여덟 달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온라인 회의’는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하지만 지난 2월만 해도 노조가 온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해도 되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컸다. 노조의 의결 방식은 자체 규약은 물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적용도 받기 때문이다.

노조법(16조)은 △규약 제정과 변경 △임원 선거와 해임 △단체협약 △예·결산 △기금 운영 △연합단체 가입과 탈퇴 △노조의 합병·분할·해산 △조직형태 변경 △기타 중요한 사항을 총회에서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의원회로 총회를 갈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최방식에 대한 별도 조항은 없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까지 대부분 ‘대면 회의’를 했기 때문에 별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촉발한 노동의 생태계 변화는 어떻게 참여를 이끌어 낼 것인지, 방식이 중요해졌다. 비대면이 새로운 기준이 되면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모바일투표나 온라인 회의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KT노동인권센터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요청해 확인한 ‘노조의 온라인 투표시스템(K-Voting) 이용 현황’을 보면 2017년 43개 노조가 이용했던 온라인 투표는 2019년 178개 노조로 4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7월까지 170개 노조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온라인 투표시스템을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 한국노총 중앙위 전자투표 사진. <매일노동뉴스 재구성>


코로나19가 앞당긴 노조의 디지털 전환

민주노총은 이달 24일부터 본격적인 선거레이스에 들어간다. 조합원 직선으로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을 뽑는다. 지금까지 확정된 선거인만 93만1천542명으로 우리나라에서 공직선거 다음으로 규모가 큰 선거다. 선거 방식은 현장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현장투표와 모바일투표,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투표하는 방식, 해외파견자를 고려한 이메일 투표, 구속된 사람을 위한 우편투표 등 5가지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모바일과 ARS 투표 비중이 67%로 2017년 2기 직선제(41.8%)보다 대폭 늘었다. 강지현 민주노총 총무실장은 “아무래도 코로나19 영향도 있고, 선거관리 인력과 비용 부담이 크다 보니 전자투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듯하다”고 설명했다.

전자투표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직접·비밀·무기명 투표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본인 인증절차와 개인 투표 결과가 식별되지 않는 공증된 기술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전자투표가 일반화하지 않았을 때는 본인이 직접 투표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리투표, 부정투표 의혹이 일기도 했다. 2016년 A저축은행이 모바일투표를 거쳐 파업을 한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A저축은행노조는 당시 임금·단체협상이 결렬되자 전자투표 전문업체에 위탁해 모바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재적조합원 311명 중 310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305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파업이 가결됐는데 사측이 모바일투표는 노조법 41조를 위배한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2017년 4월 “노조법 41조1항은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에 의해 노조의 쟁의행위에 관한 찬반투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투표 방식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직접·비밀·무기명 투표 원칙이 침해될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쟁의행위가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거치지 않고 부당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 민주노총 중앙위 화상회의 사진. <민주노총>


전자투표는 현장 투표를 대체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여전히 현장투표를 고수하는 노조도 있다. KT노조는 직원 1만8천여명 가운데 절반이 재택근무 중이던 9월23~24일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를 현장투표 방식으로 진행했다. 강도 높은 방역 조치에 따른 재택근무 기간임에도 노조의 투표는 대면방식으로 진행한 것이다. KT노조 관계자는 “투표 기간도 이틀로 늘리고 손 소독제와 장갑 등을 사용해 철저하게 방역지침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전자투표 방식을 선택하지 않은 데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지난해와 올해 대의원대회에서도 ‘선관위가 주관하는 온라인 투표시스템을 이용해 노조 선거와 조합원총회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건의가 나왔지만 노조가 수용하지 않았다”며 “당시 노조의 공식 입장은 ‘모바일투표제가 투표권 남용과 조작 우려, 대리투표 의혹이 확실히 제거되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전자투표냐, 현장투표냐를 둘러싼 논란은 KT노조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바일투표의 장점은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참여할 수 있어 접근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끌어내 민주적 결정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도 엄연히 배제와 차별은 존재한다. 모바일투표는 정보기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에게는 오히려 자유로운 표현을 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전택노련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평균 연령이 60대다 보니 모바일투표를 어려워한다”며 “상반기 대의원대회를 모바일투표 방식으로 했는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일부 대의원들은 결국 모아 놓고 진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기술이 아닌 사람

더 큰 문제는 토론과 숙의 과정이 사라지는 것이다. 장석원 금속노조 대협부장은 “올해 3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금속노조도 모바일투표 형태로 대의원대회를 했지만 5월에 결국 모여서 또 대의원대회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토론 없이) 모바일 기기로 찬반 여부만 찍는 것은 투표라는 요식행위만 있을 뿐 민주주의 실현으로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1번이냐, 2번이냐를 선택하는 선거와 달리 여러 의견을 모아 결정하는 회의는 온라인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다수결 방식보다는 ‘민주집중제’ 같은 운영원리를 채택한 노조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김한별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부장은 “노조에게 익숙한 방식은 집단 토론을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결의하는 것인데 온라인으로는 논의할 수 있는 참가자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보니 과두화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밖에 선택할 수 없었던 조건에서 노조들마다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한 많은 실험이 진행됐다. 허허벌판 야외 운동장에서 2미터 이상 간격을 유지한 채 떨어져 앉아 대의원대회를 한 노조도 있고, 줌이나 웨비나 같은 최신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의사결정을 한 곳도 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다.

공동취재팀 : 김미영·이재·강예슬·정소희·임세웅·어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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