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대법원 2020. 9. 3. 선고 2015도1927 판결
 

▲ 신선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한국수자원공사(수자원공사)는 용역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해 시설관리와 청소업무 등을 수행하게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전지부 수자원공사지회 소속 조합원들인 K 등은 위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수자원공사 내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었다.

K 등은 2012년 6월께 위 용역업체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진행하다가 결렬돼 쟁의행위(파업)에 돌입했다. 노무제공을 거부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근무장소인 수자원공사 내에서 집회·농성 등을 하고, 대체근로에 대한 감시활동을 했다. 그러자 수자원공사가 K 등을 고소했고, 검찰이 이를 받아들여 K 등을 업무방해죄와 퇴거불응죄로 기소했다.

검찰의 공소사실 요지는 K 등은 수급인(하청) 소속 노동자들로서 도급인(원청)인 수자원공사는 사용자의 지위에 있지 않아 쟁의행위 상대방이 될 수 없음에도 수자원공사를 압박해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 내기 위해 수자원공사 사업장 내에서 구호를 외치고, 율동과 노동가를 제창하고, 차량에 설치된 확성기를 이용해 소음을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수자원공사 사업장 일부를 점거한 채 농성(이 사건 집회·농성)을 함으로써 위력으로 수자원공사의 업무를 방해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퇴거요구에 불응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에는 용역업체 사용자가 쟁의기간 중 대체근로자를 투입해 K 등이 이를 저지하며 발생한 소란행위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공소사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유죄로, 2·3심은 무죄로 판단한 바 있으나 지면관계상 이 부분 관련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2. 이 사건의 쟁점과 판결의 요지

(이 사건 관련 1, 2심 판결에서는 수자원공사와 용역업체를 지칭할 때 원청·하청 또는 파견사업주·사용사업주 등의 표현이 혼재돼 있는데, 이하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표현을 기준으로 수자원공사와 같은 원청은 ‘도급인’으로, 위 용역업체와 같은 하청은 ‘수급인’으로 지칭하기로 한다.)

본 사건의 주요 쟁점은 도급인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수급인 소속 노동자들이 사용자인 수급인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할 때 자신들의 근무지인 도급인 사업장에서 쟁의행위 일환으로 집회·농성 등을 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1심 법원(대전지방법원 2014. 1. 23. 선고 2013고정806 판결)은 K 등은 수자원공사 소속 근로자가 아니라 수급인 소속 근로자이고, 쟁의행위도 수급인을 상대로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므로 사용자가 아닌 수자원공사 사업장 내에서 이 사건 집회·농성 등을 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업무방해·퇴거불응죄로 본 것이다.

반면 2심 법원(대전지방법원 2015. 1. 15. 선고 2014노390 판결)은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이 근로제공 장소인 도급인 사업장에서 수급인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도급인의 재산권 또는 시설관리권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도급인도 그로 인한 업무지장을 일정 부분 수인할 의무가 있음을 인정하며 이 사건 집회·농성 등은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다. 대체근로자 투입 여부 감시 필요와 파업 불참 근로자들에 대한 피케팅 등의 필요성을 고려할 때 헌법상 보장되는 쟁의권에는 그 본질상 ‘근로를 제공하는 장소’에서 쟁의행위를 할 권리가 포함된다고 해석되는 점, 도급인이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에게 근무지를 제공하고, 그 근로제공 결과를 향유하는 점 등이 주요 근거로 제시됐다. 업무방해·퇴거불응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대상 판결)은 이 사건 집회·농성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대법원은 사용자인 수급인에 대한 관계에서 쟁의행위가 정당성을 갖췄다는 사정만으로 사용자가 아닌 도급인에 대한 관계에서까지 법익 침해의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은 아님을 전제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같은 도급관계(사내하청)에서는 ① 근로제공 장소인 도급인 사업장이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고, ② 쟁의행위의 주요 수단 중 하나인 파업이나 태업은 도급인 사업장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으며, ③ 도급인은 근로계약 상대방은 아니지만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의 근로 제공에 의한 이익을 향수하고, 이를 위해 도급인 사업장을 그 근로 장소로 제공한 것이므로 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쟁의행위로 인해 일정 부분 도급인의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그것이 항상 위법한 것이 아니고, 도급인으로서는 사회통념상 이를 용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봤다. 그러한 쟁의행위(집회·농성)는 형법 20조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통념 등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쟁의행위의 목적과 경위, 쟁의행위의 방식·기간과 행위 태양, 해당 사업장에서 수행되는 업무의 성격과 사업장의 규모, 쟁의행위에 참여하는 노동자 수와 이들이 쟁의행위를 행한 장소 또는 시설의 규모·특성과 종래 이용관계, 쟁의행위로 인해 도급인의 시설관리나 업무수행이 제한되는 정도, 도급인 사업장 내에서의 노조활동 관행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판단기준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3. 대상판결의 의의

그간 노동 3권, 특히 쟁의권 관련 법리나 판례는 대부분 직접고용 관계에서의 사용자에 대한 법익 침해(업무 저해·시설관리권 제한 등)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관련해 대법원은 쟁의행위 과정에서의 직장점거도 전면적·배타적 점유가 아닌 부분적·병존적 점유를 하는 것은 사용자의 시설관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니어서 정당한 쟁의행위에 해당하며, 쟁의행위의 본질상 업무저해는 부득이한 것이므로 사용자에게는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법리 등을 확립하고 있다(91도383 판결 등 다수).

간접고용 관계에서의 도급인 관련 법익침해 쟁점에 대한 판례나 법리 등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간접고용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근로제공 장소(도급인 사업장)에서 쟁의행위를 하는 것도 허용된다는 점, 그로 인해 도급인의 법익 침해가 있어도 도급인에게는 일정 부분 용인의무가 있다는 점, 이러한 쟁의행위가 용인될 수 있는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 등을 명백히 판시하고 있다. 간접고용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무지에서의 쟁의행위 허용 여부와 판단 기준을 명백히 한 첫 대법원 판결이며, 근로제공 장소에서 쟁의행위를 할 권리를 기본권(쟁의권)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고 간접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이러한 노동기본권이 함부로 제한될 수 없음을 확인한 판결로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쟁의권 행사는 이 사건에서와 같은 불법성 시비 등으로 인해 상당 부분 위축돼 있기도 했는데, 대상판결은 간접고용 사내하청 노동자 쟁의권이 보다 온전히 보장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나아가 그간 도급인(원청)들은 간접고용 노동자와 관련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도 그 근로제공으로 인한 이익은 모두 향유해 왔다. 이러한 점이 간접고용 남용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이에 대상판결이 도급계약을 통해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제공 이익을 향유하는 도급인(원청)에게 일정한 법적 책임(쟁의행위로 인한 법익침해를 용인할 의무)을 인정한 부분은 도급인(원청)이 간접고용 관계하에서 부담해야 하는 실질적 법적 책임 확장과 간접고용 남용 억제 등에 긍정적 영향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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