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국어사전을 들여다보노라면 재미있는 말을 만날 때가 많다. 우선 아래 낱말부터 보자.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다.

해귀(海鬼) : 1. ‘보자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민속> 바다에서 산다는 귀신.

바다 귀신이야 특별할 게 없지만 첫 번째 풀이에 나오는 ‘보자기’는 대체 뭘까? 더러 아는 이도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보자기라는 낱말 외에 다른 보자기가 더 있다.

보자기 : 바닷속에 들어가서 조개, 미역 따위의 해산물을 따는 일을 하는 사람. ≒해인(海人).

‘보자기’와 ‘해녀’는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옛 문헌에 해산물을 채취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어로 ‘포작인(浦作人/鮑作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포작인’이라는 낱말을 찾을 수 없다. 다만 ‘토선(土船)’ 항목에 ‘포작인’이 들어간 예문을 제시하고 있다.

차차 포작인은 매달 초에 출선하는 진상선이나 공행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뜨는 토선의 사공으로 징발되는 수가 많아….(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포작인을 왜 표제어로 올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대신 아래 낱말을 표제어로 삼기는 했다.

포작(匏作) : →보자기. ‘보자기’를 한자를 빌려서 쓴 말이다.

‘포(匏)’는 박 혹은 바가지를 뜻하는 한자다. 그러니 한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풀이에 나온 것처럼 ‘보자기’를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적당히 끌어온 글자라고 할 수 있다. 왜 하필 저렇게 어려운 한자를 끌어왔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보자기’가 본래부터 쓰던 순우리말이고, 그걸 ‘포작(匏作)’이라는 한자로 표기한 거라는 주장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로서는 판단하기 힘들지만 조선왕조실록에 ‘포작(匏作)’은 안 보이고 ‘포작(浦作)’이 한 차례 등장한다.

해척(海尺)과 포작(浦作)하는 호(戶)에 이르러서는 더욱 가련합니다. 한겨울에 전복을 캐고 한추위에 미역을 채취하느라 남자와 부녀자가 발가벗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 떨면서 물결에 휩싸여 죽지 않은 것만도 참으로 요행이며….(순조실록 27권)

우의정 심상규(沈象奎)가 바닷가 사람들의 곤궁한 삶을 헤아려 달라며 올린 상소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해척(海尺)’은 고기 잡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뜻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위에 나온 ‘포작(浦作)’과 함께 ‘포작인(鮑作人)’과 ‘포작간(鮑作干)’이라는 말이 꽤 많이 나온다. ‘포작인(鮑作人)’은 국어사전에 없고 ‘포작간(鮑作干)’은 다음과 같이 나온다.

포작간(鮑作干) : 예전에, 전복을 전문적으로 잡아 진상하던 사람을 낮잡아 이르던 말.

보자기는 주로 제주도 사람들이 ‘보재기’ 정도의 발음으로 부르던 말로, 해녀가 여자를 가리킨다면 보자기는 잠수 어업을 하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전복 캐는 일을 맡았다. 전복은 조선 시대 왕실에 바치는 주요 해산물이었기 때문에 해녀뿐만 아니라 보자기들도 전복 캐는 일에 많이 동원됐다. 국어사전에 이런 ‘보자기’의 한자어 표기로 ‘匏作’만 제시한 건 문제가 있다. 오히려 ‘浦作’과 ‘鮑作’의 용례가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한자를 나란히 병기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다음은 고려대한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 나오는 낱말이다.

머구리 : ‘보자기’의 방언(경북).

둘 다 경북지방 방언이라고 했지만 강원도 바닷가 사람들도 함께 쓰는 말이다. 통영을 비롯한 경남쪽에서는 ‘모구리’라고 한다. 이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개구리의 방언이 머구리이므로 그 둘을 연결짓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잠수를 뜻하는 일본말 ‘모구리(もぐり, 潛り)’에서 왔을 거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통영에 가면 모구릿배라는 게 있다. 모구리들을 실어나르며 어업에 종사하는 배를 가리킨다. 해녀와 보자기들은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지만 머구리(모구리)들은 잠수 장비를 갖추고 들어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머구리(모구리)들은 묵직한 청동 투구를 쓰고 잠수를 하며, 배에서 공기 펌프를 이용해 투구와 연결된 관으로 공기를 공급해 준다.

박일환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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