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화 공인노무사(서울시 버스정책과)

코로나19발 해고대란이 확산하고 있다.

공항·관광업계를 시작으로 그야말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있다. 정계와 재계는 노동자의 고용불안 운운하면서 해고 요건 완화를 위한 노동법 개정 카드를 또다시 꺼내 들고 있는 현실이다. 코로나19는 재계의 마법카드라도 된 모양이다.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앞에서 안전도 생명도 생계도 위협받고 있다.

공공 분야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민간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덕분에 다행히도 찬바람을 피해 가고 있다. 이유는 바로 그들이 “공공성”을 책임지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기에 민간의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

문제는 공공성을 이유로 일자리 안정을 보장받지만, 공공성을 진정으로 고민하는가다. 공공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민간의 논리가 공공에게 통용되지 않는 이유는 공공 분야가 재정적으로 탄탄해서가 아니다. 민간의 위기는 공공에게도 위기다.

공공에도 재정위기는 존재한다. 오히려 민간의 재무구조보다 심각할 때가 많다. 현재처럼 코로나19 위기가 심각해질 때는 공공부문도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공공의 위기는 종종 잊혀지거나 무시당한다. 그런 이유로 공공 분야 노동자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권리주장에 몰두할 수 있다. 어떠한 권리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가중치가 있다고 믿는다.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권리,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 같은 것들 말이다. 이 권리들은 그 어떤 권리보다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나는 공공 분야 노동자들에게 바라는 역할이 있다.

민간 노동자들이 위와 같은 권리를 박탈당할 때 먼저 손을 내밀고 목소리를 높여주길 바란다. 그러한 소리를 높여 주는 것이 공공기관 노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너희들도 우리 정규직처럼 ‘자격’을 갖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사회적 염치’를 갖추는 모습일 테다.

정부 예산은 화수분이 아니다.

어느 예산에서 누군가의 권리를 위해 돈을 사용하면, 분명 다른 한쪽에 쓰일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시기에 연대의식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누군가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혹은 공명심으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모든 공공 분야 노동자들이 이기적이라거나 자신의 권리만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역학조사관으로, 공항으로, 보건소로 차출돼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고 또 뛰어들고 있다. 감염 위험에도 병원에서 현장을 지키며 환자를 치료한 노동자들도 있다.

공공 분야 노동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직무에 충실히 복무한 그 자체로 자신의 역할을 다해 낸 것일 진데, 그들의 권리주장이 잘못된 것처럼 오독될까 두렵기도 하다.

며칠 전 독일의 언론노동자들이 코로나19 시기인데도 파업해 임금인상을 이뤄 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이 잘못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보다 지금같이 힘든 시기에도 초과이윤을 출혈하지 않는 기업과 이를 방치하는 정권을 비판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권리 쟁취를 위한 노동자 투쟁은 옳고 그름으로 논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또한 당연히 현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은 기업과 정부에 있다.

그런데 같은 현장에서 내 임금의 반만 받으며 살아 가는 불안정한 노동자, 또는 갑작스러운 경제 위기에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누군가의 처지에 가슴 아파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내 권리의 가치보다 그들의 권리에 가중치를 부여하고 조금 더 앞에 두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함께 말해 보는 것이 어려운 요구일까 싶다.

최소한 내가 지금 더 급하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모든 권리는 소중하다. 하지만 더 시급한 권리도 있다.

측은지심, 오래되고 고루한 말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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