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1주일 정도만 지나면 일할 수 있대서 그것만 기다렸는데, (정년연장 약속 이행을) 자꾸 미루잖아요. 그러다가 지금까지 온 거예요.”

부산역 선상주차장에서 차량안내와 요금정산 업무를 했던 김지석(62·가명)씨는 지난해 12월30일을 떠올리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날은 코레일네트웍스 노사가 무기계약직 직원의 정년을 한 살 연장하기로 합의한 날이다. 합의서에는 “무기계약직의 정년은 2019년부터 만 61세로 하되 역무직 및 주차직의 정년은 만 62세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주차직으로 일하던 김씨는 1년 더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는 합의 이행을 차일피일 미뤘다. 정년연장 내용을 담은 인사규정 개정안을 지난 3월 이사회가 부결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은 지난 7월15일 회사에 “현안합의서를 조속히 이행하라”고 행정지도를 했지만 회사는 거부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정년연장 대상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해고를 통보했다. 부산에 사는 김씨가 8월7일부터 매일같이 KTX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피켓시위를 이어 가는 이유다.

“기간제로 일할 걸 … 후회 남긴 무기계약직 전환”

역무직으로 8년째 일한 박성현(61·가명)씨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도 1년마다 계약서 안 써도 되는 그것 하나 좋고 급여는 안 달라졌다”며 “정년이 지난 뒤에도 촉탁직으로 일할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회사는 8월 직전까지도 이들의 4대 보험료를 납부했다. 노동자들은 정년연장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역무직 노동자 윤대진(61)씨는 “퇴직할 거라고 생각했으면 이후 계획을 짰을 텐데 정년연장이 된다는 말에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와 윤씨는 지난달부터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정년연장 대상자 23명은 2014년 박근혜 정부와 2017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대신 정년이 만 60세로 축소됐다. 노조에 따르면 노사는 정규직 전환 정책의 본래 취지와 달리 고용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에 공감해 2019년 단체협약 체결 전 먼저 정년연장에 합의했다. 해당 기관 기간제 노동자는 촉탁직으로 만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비추어 볼 때 무리한 합의가 아니었다. 그런데 회사가 말을 바꿨다.

회사는 “절차 및 법령에 의해 중대문제 발생시 이 합의는 무효로 한다”는 내용의 합의서 조항을 강조하고 있다. 이사회의 부결을 ‘무효’ 근거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지부장 서재유)는 이사회 내용과 무관하게 노사합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약속 불이행 회사 어떻게 믿고 교섭하나”

서재유 지부장은 “회사가 고용보험 상실 신고를 한 것은 노사상생 방안을 깬 것으로 사실상 해고 통보”라며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믿고 교섭을 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서 지부장은 “더 늦기 전에 회사가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노사는 2019년 단체협약과 2020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진행 중이다.

코레일네트웍스 관계자는 “절차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때 (합의 내용을) 무효화한다는 단서조항으로 합의서 효력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때문에 행정지도를 포함해 합의를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사회 부결은 절차적으로 중대한 문제로 판단돼 (합의) 이행의무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향후 (합의를 이행하라는) 행정기관이나 법적 판단이 있다면 이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서부지청 관계자는 “단협이 유효한지 여부는 노동위원회의 권한”이라며 “단협 현안합의서를 체결했고 대표이사와 노조가 일관되게 유효하다고 주장해서, 이를 이행하도록 지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진정 내용에 대해 검찰 지휘를 받아 본 결과 내사를 종결하라는 지휘가 떨어져 향후에는 노조측에 민사 절차 등을 안내하고 (사건) 종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노동위 견해 제시 권한 범위를 넘어선다”며 노사의 합의서 해석에 관한 견해 제시 신청을 각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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