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

필수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달 10일 전국에서 최초로 서울 성동구에서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공포됐고, 언론 보도가 뒤따랐다. 대통령이 “정부 각 부처는 코로나 감염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놓여 있는 필수노동자들에 대해 각별히 신경쓰고 챙겨 주기 바란다”고 밝힌 뒤 고용노동부는 ‘필수노동자 안전 및 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필수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다.

국회에서 열린 ‘필수노동자를 위한 정책 및 제도마련 토론회’에는 여당 대표와 정책위의장이 등장하고 기획재정부·노동부·국토교통부에서 토론에 나섰다. 기초자치단체 조례에서 출발해 그야말로 당·정·청 공조와 함께 범정부적인 반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관계부처합동 TF에서 논의됐다는 ‘코로나19 사회의 필수노동자 안전 및 보호 강화 대책’에는 “필수노동 대면서비스 분야는 전통적으로 근무여건(저임금·장시간근로·산업재해 등) 및 고용안정성이 취약한 일자리가 다수”이며 “코로나19 확산으로 필수노동자는 대면서비스 업무량과 노동강도가 오히려 증가해 감염·과로 등 산업재해 위험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이 적시돼 있다.

현황·문제점에서도 감염 및 산재 위험 노출, 지나친 과로와 근무여건 취약, 노동법 보호·안전망 사각지대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진단을 했으니 적절한 처방이 중요하다. 정부 대책안에는 당장에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들에 대한 방역실태를 지도·점검하고 감염예방을 위한 장비를 지원하는 것, 산재보험 적용 범위와 가입을 확대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취약 분야 노동관계법 준수에 대한 점검과 감독을 강화하고, 고용보험 적용 확대하는 방안도 담겨 있다.

분야별로도 보건·의료, 돌봄서비스, 택배기사, 배달종사자, 환경미화원에 대한 대책이 제안됐다. 대통령의 관심과 발언은 이렇게 순식간에 대책으로 바뀌어 등장했다.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노동법 보호·안전망 사각지대라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나 대책은 부족하다. 상당수 필수노동자들이 배제되는 근로기준법 개정, 법적 권리를 갖는 노동자성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해석, 상병수당의 도입이 아니라 ‘특고종사자’라는 모호한 개념에 집착해 대책을 세우는 것은 문제다.

증상을 다스리는 대증처방도 필요하지만 그 원인을 찾아 개선하는 근치적 치료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진보센터’에서 제시한 필수노동자들에게 필요한 핵심적인 일곱 가지 정책개혁 과제는 참고할 만하다.

7개 과제는 공기매개 감염질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조치 기준, 감수하는 위험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유급 가족휴가 및 상병 휴가, 아플 경우 저렴한 의료에 대한 접근성, 학교나 아동센터가 폐쇄해도 일하러 갈 수 있도록 하는 자녀 돌봄의 질, 현장 안전보건 기준에 대한 강력한 단속, 최저선 이상의 작업안전과 보상 기준이 실현 가능하도록 하는 노조가입 및 단체협약이다.

필수노동과 비필수노동 경계는 모호하다. 유지해야 할 사회기능을 어떤 것으로 볼 것인지, 생산과 소비의 사회문화적 특성, 교육과 의료 등 공공서비스 제공 방식에 따라 국가·지역마다 달라질 수 있다. 필수노동자만이 아니라 어떤 노동자가 더 위험해지는가를 살펴야 원인치료가 가능하다.

코로나19 시대에 필수노동자라면 ‘노동을 해야만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 비필수노동자라면 ‘노동을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국가와 사회가 나눌 책임에 대해서 살펴야 한다.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필수노동자’이지만, 혹여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라는 코로나19 방역 첫 번째 수칙을 지켜야 할 때 빚어지는 생활상 문제에 대해 오로지 ‘개인’이 감내하게 둬서도 안 된다.

‘필수노동자’라는 표현은 우아하면서도 선정적이다. 팬데믹 시기에만 이센셜 워커(essential worker), 키 워커(key worker) 혹은 ‘필수’노동자로 관심을 받다가 일상의 시기로 돌아가면 다시 부려먹기 쉽고 자르기 쉬운 값싼 노동, 그림자 노동, 불안정 노동이 되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작금의 ‘필수노동자’ 논의가 선정성을 넘어서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 사회의 분석과 과제를 다시 새길 필요가 있다. 핵심 정책개혁 과제로 최저선 이상의 작업안전과 보상 기준이 실현 가능하도록 하는 노동조합 가입과 단체협약을 제시하고, 필수노동이 사회적 필요에 비해 저평가되는 근원에 ‘권력격차’가 있다는 분석 말이다.

한국노총이 성명을 통해 정부가 발표한 필수노동자 보호 TF 구성과 보호방안에 대해 늦었지만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직접당사자인 노동계 참여가 없고 노동기본권 보장,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이 빠져 있음을 지적한 지점도 중요하다.

노조 가입이 언젠가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범용 백신’이 될 수 있기를 사뭇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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