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IMF 연차총회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잇왓치(Human Rights Watch)를 비롯한 전 세계 504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28일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긴축 강요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타격에서의 회복을 막고 불평등을 심화시켜 사회경제적 권리를 위협한다”며 채무국에게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도록 압박하는 IMF 정책을 재고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IMF가 채무국에 부과하는 조건은 세계적 코로나19 유행 이후의 경제 상황과 사회 지형을 새롭게 만드는 데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관련 정책이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다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성명에 동참한 국제시민사회단체는 IMF가 이미 여러 나라에 장기적인 긴축 조건 프로그램을 강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빈곤과 불평등이 악화하고 민중의 사회경제적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세계 도처에서 긴축을 강요하길 멈추는 대신 사람과 지구 행성을 우선하는 원칙을 세우고 성정의(gender justice) 증진과 불평등 감소를 위한 정책을 전개하라”고 촉구했다.

국제시민사회단체는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난 이후 세계 각국이 다시 긴축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IMF의 처방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서 코로나19 유행병은 보건·교육·사회보장에 대한 투자를 체계적으로 회피했던 것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이 위기가 중간계급을 위축시키면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여성·노인·소수민족, 비공식노동자와 저소득 가정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들어 IMF는 경제적 불평등과 남녀 불평등 그리고 기후변화가 성장을 약화시키고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분석과 더불어 이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공정한 ‘그린’ 회복의 필요성을 반복해서 주장해 왔다. 또한 그 일환으로 경제적 불평등과 성적 불평등에 대한 분석 기준을 사업 지침에 넣고 사회적 지출을 위한 거시경제 계획을 지지하면서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IMF는 장기긴축 조건으로 대출을 해 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여러 나라에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IMF의 코로나19 긴급 금융 패키지를 받은 채무국은 전염병 사태에서 회복된 이후 ‘재정 안정성(financial consolidation)’을 촉진하는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하고 있다고 국제시민단체들은 주장했다.

IMF로부터 얻은 빚을 갚아야 하고 또 경기 회복을 위해 여러 가지 재정 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정긴축 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사회경제의 틀을 새롭게 만드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정안정성에 목맨 경직된 재정긴축이 빈곤을 악화시키고 사회경제적 권리를 훼손한다는 사실은 IMF 자체 연구를 통해서도 이미 확인됐다는 게 국제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이다.

보건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삭감되고, 평생 일해 쌓은 연금과 사회보장이 사라지고, 임금이 동결되고, 정리해고를 강행하고, 무급 돌봄노동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은 엘리트와 대기업·채권자 같은 상류층이 아니라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하층민이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긴축 프로그램 강요에 따라 발생하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속가능한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진정한 안정화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이며 정의로운 회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채무국에 재정긴축과 삭감을 강요할 게 아니라, 시간을 주고 정책적 유연성을 보장하고 제대로 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국제시민사회단체는 강조했다. 보조금을 제공하고, 최대한 관대한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하며, 부채 탕감을 통해 구조조정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인출권(SDR) 배분과 할당을 새롭게 구성하는 정책을 실천하는 데 IMF가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발맞춰 각국 정부는 부유세를 도입하고 누진세를 강화하며 기업의 초과 이윤에 대한 과세에 적극 나섬으로써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모든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국제시민사회단체 성명은 이달 12~18일 열리는 IMF 연차총회를 맞아 발표됐다. 코로나19 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열리는 올해 IMF 총회가 재정긴축과 경제위기의 반복이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정책 실패에서 벗어나, 불평등과 싸우고 기후 정의를 좇으며, 인권을 실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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