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의 생애주기별 복지를 책임지는 노동복지 허브.”

강순희(61·사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구상하는 공단의 미래상이다. 정부는 직종이나 산업별로, 각 부처·기관별로 대동소이한 복지정책을 편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식이다. 그래서 노동복지 허브가 되겠다는 계획은 도발적이기도 하다. 공단이 흩어진 복지제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한 것이기 때문이다.

강 이사장은 “여러 곳에서 대책을 만들면 공급자 중심의 제도가 만들어지게 된다”며 “수요자가 필요할 때 편안하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하는 사람의 생애주기에 따라 겪게 되는 산재·실직·체불·퇴직 등의 사건은 공단 자체 사업으로 1차 지원하고, 공단 사업 외 지원은 유관기관에 연계하는 2차 지원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취약한 사회안전망으로 공단이 조명을 받고 있다. 일자리안정자금·기부금 사업 등 정부 지원대책 대부분을 공단이 떠안았다. 고용보험 담당 기관으로서 정부의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준비 과정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월 취임한 강 이사장은 노동복지 허브나 빅데이터 구축사업 같은 과감한 정책을 제시하며 공단을 이끌고 있다. 그는 산업인력공단 직업훈련연구소 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기대 교수(직업학) 등을 거치며 노·사·정과 오래 관계를 맺어 왔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공단 남부지사에서 이뤄졌다.

“내년 노동복지빅데이터센터 설립 목표”

- 코로나19로 사회안전망 강화 필요성이 높아졌고 공단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공단은 고용·산재보험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공공조직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이건 억울한 일이다. 외국제도와 외국기관 등 안팎 사례를 살펴봐도 생애주기별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공단 외에는 없다. 우리가 이미 잘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 사업을 체계화하려 한다. 그 개념을 노동복지 허브에서 찾으려 한다. 노동복지 허브는 일하는 사람의 생애를 아우르는, 생애주기별 복지를 책임진다는 개념이다. 일하는 사람은 전통적 노동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상공인·특수고용직·일용직 등 취업자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에 공단이 있을 것이다. 복지 정책은 공단 외에도 다른 부처·기관도 담당하고 있다. 여러 곳에서 대책을 만들면 공급자 중심의 제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수요자가 필요할 때 편안하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공단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 전 생애를 아우르는 노동복지 중심기관이란 어떤 의미인가.
“공단은 노동보험(고용·산재보험), 퇴직연금, 일자리안정사업 등과 관련해 1천500억건 이상의 노동복지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사업별로 개인과 사업장 정보가 흩어져 있다. 일하다 산재 치료를 받거나, 실직이나 소득 감소처럼 개인이 일하는 동안 발생한 모든 사건이 담겨 있다. 이 정보를 건강보험·국민연금 정보와 연계하면 복지제도 전반을 쉽게 관리할 수 있다. 행정업무를 굉장히 효율화할 수 있다. 공단은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 노동복지빅데이터센터구축TF팀을 가동하고 있다. 내년에 데이터 관리 전담 부서인 노동복지빅데이터센터 설립을 목표로 삼고 있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과학적 정책 결정에도 역할을 할 것이다.”

“배달종사자 노동정보 수집, 고용·산재보험 확대에 활용”

- 공단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에 따라 배달플랫폼 회사 슈퍼히어로와 업무협약을 했다. 배달노동자 중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는 이들의 노동시간·휴게시간·임금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경사노위에서 배달노동자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공단 역할이 얘기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기뻤다. 특수고용직이 사회보장 분야에서 쟁점이 되고 있지만 아무도 그들의 정체를 모른다. 일하는 유형은 다양한데, 소득 구현방안은 무엇인지, 어떤 사회적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명확한 실태가 파악되지 않았다. 업무협약으로 확보하는 배달노동자 정보를 분석하면 그들의 숨겨진 실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사회보장을 확대하기 위한 기초자료다. 산재보험뿐만 아니라 전 국민 고용보험제 실현을 위해서도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기획단을 운영하고 있다. 공단도 기획단을 지원하는 적용확대추진TF팀을 가동 중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정확히 말하면 전 국민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고용보험이 맞다. 취업자 보험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임금노동자 외에 숨겨진 취업자를 보완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들은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우리 전통적 관리 틀로는 잡히지 않는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가기로 했다. 예술인·특수고용직·자영업자로 넓혀 가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교사·군인 등 특수직연금을 받는 이들도 노동보험 체계로 편입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생애주기별 보장체계를 갖추게 된다. 취업자 소득정보를 파악해야 하는 과제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많은 이들은 국세청을 활용하자고 하는데 지금 국세청은 1년에 한두 차례만 세금을 걷는다. 그런데 사회보험료는 매달 소득을 바탕으로 내야 한다. 국세청으로 징수부과를 통합하기보다는 노동보험·건강보험 등 각 기관이 파악하는 소득정보를 연계하고 실시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게 낫다고 본다. 국세청 협조도 필요하기 때문에 월 단위는 아니더라도 3개월 단위 정도로 소득을 파악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전 국민 고용보험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고 있다.”

- 코로나19 사태로 일하다 아프면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했다. 유급병가·상병수당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산재일 경우 유급휴가(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다. 치료를 받고 난 뒤에도 장해가 있으면 장해수당도 신청할 수 있다. 지금 문제는 산재가 아니면 아파도 쉴 수 없고, 돈 때문에 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 급여를 달라는 것이 상병수당이다. 현재 우리 시스템으로는 건강보험기금에서 담당해야 한다. 건강보험기금 재정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기금을 더 낼 용의가 있고, 내자는 합의가 이뤄지면 수월하게 논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동계가 코로나19 이후 선도하는 모델 제시하길”

- 공단 병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공공병원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지만 수익 창출 문제로 무척 힘들어하고 있다.
“공공기관이라면 수익사업은 부차적이 되는 것이 맞다. 현재 공단 병원은 2개 사회보험기금에서 재원을 충당한다.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이다. 공단 수익의 60%가 산재보험, 40%가 건강보험에서 나온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2개 병원이 국가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다른 사업을 일절 하지 못했다. 당연히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 밖의 공단 병원도 의사·간호사가 차출돼 다른 곳에서 일하는 등 정상적 영업을 하지 못했다. 정부가 조금 보전해 준다고 하지만 불충분할 것이다. 실력으로 환자를 유치하고 돈을 버는 자구책이 있어야 한다. 재활에서 방법을 찾고자 한다. 산재노동자뿐만 아니라 고령화로 인해 재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재활 분야 공단 병원의 실력은 아시아 최고라고 자부한다. 연구개발, 각종 재활기기, 예방의학 면에서 발군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공공병원으로 자리매김해 나갈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19로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 모두 이렇게 얘기하지만 충분하게 인지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노사뿐 아니라 전문가도 뒤처진다. 선제적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보건·경제·생활 위기는 앞으로 일상화할 듯하다. 일터와 일하는 방식, 일하는 삶에도 당연히 이 위기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노동계가 먼저 치고 나갔으면 좋겠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변화하는 세계를 선도하는 혁신적 노동정책 모델을 제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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