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

대상판결 : 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전원합의체 판결

1. 사건 개요

(1)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4호라목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은 이러한 경우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해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당해 노동조합에 대해 이 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과 그 시행령은 위와 같은 노조법과 노조법 시행령 규정을 교원 노조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3) 고용노동부 장관은 2013년 9월23일 전교조에 대해 전교조가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허용하는 규약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해직 교원 9명이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정을 요구했는데 전교조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4) 노동부 장관은 2013년 10월24일 전교조에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에 근거해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쟁점은 결국 ‘법률’이 아닌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에 근거한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한지 여부로 압축할 수 있다.

3.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요지

대법원의 판단은 다수 의견(8명), 별개 의견(2명), 반대 의견(2명)으로 나뉘었다. 12명의 대법관 중 10명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위법하다고 봤다. 다수 의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법외노조 통보는 단순히 노조법에 의한 보호만을 제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헌법상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하는 형성적 행정처분이다. 둘째, 노조법은 법외노조 통보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이를 시행령에서 규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지도 않다. 셋째, 따라서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은 헌법상 법률유보 원칙에 반해 무효다. 넷째, 무효인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에 기초한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는 그 법적 근거를 상실해 위법하다.

4. 평석

(1) 원래 구 노동조합법(1996년 12월31일 폐지)은 행정관청이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노조를 해산할 수 있는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두고 있었다. 이 제도는 이미 적법하게 설립해 활동 중인 노조를 행정관청이 임의로 해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노동악법으로 손꼽혔고, 1987년 11월28일 법률에서 삭제됐다. 그런데 그 후 불과 5개월만인 1988년 4월15일 당시 노태우 정부는 구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새로이 도입했고, 현재까지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으로 유지되고 있다. 법률에서 삭제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정부가 시행령에 의한 법외노조 통보로 부활시킨 것이다.

(2) 법외노조 통보를 받으면 노조는 노조법에서 정한 법적 지위가 박탈된다. 법인격을 취득할 수 없고(6조), 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의 조정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할 수도 없으며(7조1항), 조세를 면제받을 수도 없다(8조). 심지어 노조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도 없다(7조3항). 실제로 전교조는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후 단체교섭을 하지 못했고, 전임허가가 불허되는 등 노조로서 정상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었다. 이처럼 법외노조 통보는 이미 적법하게 설립된 노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노동 3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인 동시에 노조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 대법원 역시 같은 취지로 법외노조 통보가 가지는 실제 효과에 착목해 법외노조 통보는 헌법상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하는 형성적 행정처분이라고 봤다.

(3) 헌법 37조2항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서 제한할 수 있다. 법외노조 통보는 노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고 노조와 조합원들의 노동 3권을 제한하는 행정처분이므로 반드시 법률의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행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법률의 규정 없이 오로지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에만 근거했다는 점에서 헌법 37조2항의 법률유보 원칙에 위배된다.

(4) 설립신고서 반려 제도와 비교해 보면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위헌성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미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설립된 노조에 대한 사후적인 법외노조 통보는 설립단계 노조에 대한 사전적인 설립신고서 반려에 비해 그 침익성이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설립단계 노조에 대한 설립신고서 반려 제도는 ‘노조법 12조3항’이라는 법률에 근거가 있는 반면, 설립 후 노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이라는 시행령에만 근거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의 위헌성, 이에 근거한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위법성을 확인할 수 있다.

(5) 노조법 시행령 9조의 문언과 체계를 보더라도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위법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시행령 9조1항은 노조법 12조2항의 위임규정(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에 근거해 설립신고 보완요구를 규정하고 있다. 반면 시행령 9조2항은 위임규정 없이 곧바로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하나의 조문에서 1항은 법률의 근거가 있는 위임명령, 2항은 법률의 근거가 없는 집행명령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설립신고서 반려나 보완보다 더 침익성이 크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모순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6) 형사법에서 법치주의가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법률 없으면 형벌 없다’는 죄형법정주의로 표현된다면, 행정법에서 법치주의는 법치행정원칙으로 표현된다. 이번 판결은 ‘법률 없으면 행정입법 없고’(법률의 위임 없는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은 무효), ‘법률 없으면 행정행위 없다’(법률 없이 시행령에만 근거한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는 당연한 원칙을 새삼 확인시켜 줬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행정관청이 임의로 노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 노동조합 해산명령,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드디어 노동법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1988년 4월 당시 노태우 정부가 밀실에서 시행령으로 부활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32년 만에 드디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5. 결론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87호 협약 4조는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행정당국에 의해 해산되거나 활동이 정지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교사든, 공무원이든, 해고자든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국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이것은 20세기 문명국가에서 확립된 원칙이자 국제노동기준이다. 헌법 33조1항도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르다. 계약종료로 구직 중인 기간제교사는 조합원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기간제교사노조는 벌써 세 번째 설립신고가 반려됐다. 보험설계사들은 노조설립신고서를 접수한 지 1년이 넘도록 신고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250만명에 달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급증하는 플랫폼 노동자도 별반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공무원노조는 2009년 10월20일 전교조와 같은 이유로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지만 공무원 해직자는 여전히 거리에서 농성 중이다. 이제 그만 21세기 노동자들을 19세기 단결금지 법리의 포로로 잡아두는 야만 상태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헌법 33조에 따라 제대로 노조할 권리를 보장할 때가 됐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그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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