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처용 설화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처용이 실제 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유사>에 처용이 지어서 불렀다는 ‘처용가’가 실려 있고, 이런 사실을 교과서에서 다들 배웠으리라. 이 처용의 탈을 쓰고 추는 궁중무용을 처용무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처용무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처용무(處容舞) : <예술> 궁중의 연희 때와 세모(歲暮)에 역귀를 쫓는 의식 뒤에 추던 향악의 춤. 파랑·노랑·빨강·하양·검정의 옷을 입은 다섯 무동이 각기 처용의 탈을 쓰고 다섯 방위로 벌여 서서 여러 장면으로 바꾸어 가며 춤을 추는데, 그 사이에 처용가와 봉황음을 부른다.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국가 무형 문화재 제39호. ≒처용희.

꽤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처용무와 관련한 특이한 낱말이 나온다. 먼저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다.

풍두(豊頭) : 처용 탈의 하나.
풍두무(豊頭舞) : <예술> 풍두라는 탈을 쓰고 추는 춤.

풀이가 너무 간략하고, 풍두무 풀이에는 처용이라는 말 자체도 들어 있지 않다. 이번에는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나오는 풀이다.

풍두(豊頭) : 처용탈의 하나. 조선 10대 연산조 때 처용탈을 고쳐 부르게 한 이름이다.
풍두무(豊頭舞) : <무용> 궁중 가무의 일종으로 처용탈의 하나인 풍두 탈을 쓰고 추는 춤.

풍두라는 말이 언제 생겼는지는 알게 됐지만 왜 이름을 고쳐 부르게 했는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다. 분명히 그렇게 된 사연이나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 까닭을 찾으려면 김처선이라는 인물부터 알아야 한다.

김처선(金處善) : <인명> 조선 전기의 환관(宦官)(?~1505). 연산군의 난정(亂政)에 죽음을 무릅쓰고 간하다가 무참히 처형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간략한 프로필이다. 김처선은 세종부터 연산군에 이르기까지 일곱 왕을 섬기는 동안 몇 차례 유배를 당하고 다시 등용되기를 반복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연산군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했으며, 사극에도 여러 번 등장했던 인물이다.

김처선이 계속되는 연산군의 폭정을 지켜보다 못해 간언을 하자 화가 난 연산군은 김처선을 죽여 버렸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은 연산군은 모든 문서에 김처선의 이름에 들어 있는 처(處)자의 사용을 금지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김처선과 같은 이름을 쓰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바꾸게 했고, 심지어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 중 시험 답안에 처(處)자가 들어 있으면 합격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런 처사의 연장선에서 처서(處暑)는 조서(徂暑)로, 처용무(處容舞)는 풍두무(豊頭舞)로 이름을 바꿨다.

연산군의 포악함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처선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연못을 판 다음 죄명을 돌에 새겨 묻도록 했으며, 부모의 무덤까지 뭉개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김처선의 본관(本貫)인 전의(全義)를 없애 버렸으며, 양아들까지 죽였다. 김처선이 얼마나 미웠는지 연산군은 이미 죽은 자를 향해 자신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악행을 퍼부었다.

김처선이 복권된 건 그로부터 약 250년이 지난 영조 때였다. 영조는 충언을 하다 운명을 달리한 김처선의 뜻을 기려 정문(旌門, 충신 등을 표창하기 위해 그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을 세우도록 지시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김처선의 최후를 간략하게 처리했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묘사가 나온다. 화가 난 연산군이 화살을 쏴 김처선의 갈빗대에 명중시켰는데, 그래도 김처선이 굴하지 않자 그 자리에서 김처선의 다리를 잘랐다. 그런 다음 일어나서 걸을 것을 명하자 김처선은 “임금께선 다리가 끊어져도 걸을 수 있습니까?”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 다음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긍익의 기록은 정사라기보다는 시중에서 떠돌던 야사를 듣고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김처선이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을 하게 된 계기가, 연산군이 툭하면 술에 취해 기녀들과 처용무를 추며 음란하게 노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그랬다는 기록도 있다. ‘풍두(豊頭)’와 ‘풍두무(豊頭舞)’라는 말에는 이런 비극적인 역사가 숨겨져 있다.

박일환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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