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달 18일 저녁, 재판으로 일정이 변경된 민변 노동법교육을 해야 했다. 매년 신입 변호사를 대상으로 민변 노동위원회가 주관해 온 실무교육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미뤄 오다 온라인방식으로 실시했다. 몇 년 전부터 ‘임금과 근로시간’편을 강의해 왔던 터라, 교안은 기존의 것에 새로 나온 판례 정도만 반영해 수정해 보내면 됐는데, 이번에는 PPT교안을 준비해야 해서 신경이 쓰였다. 교안 말고도, 교육생 없이 텅 빈 강의실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혼잣말로 떠들어 대야 한다는 것도 그랬다. 내 말을 알아듣는지 살펴 가며 그들의 눈을 마주치면서 반응할 수 있어야 그나마 없던 흥이라도 뽑아 내서 한썰 풀어 댈 수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는 비대면 강의방식에 사실 나는 막막했다. 하지만, 그건 강의 시작과 함께 사라졌다. 할 말이 많은 주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2.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지만 제대로 한 것이다.” 이런 엉뚱한 말로 이날 강의를 시작해야 했다. 임금과 근로시간으로 구분해 교안내용을 정리해서 보내 줬더니, PPT교안은 임금에 관한 것으로 편집돼 있었다. PPT작업을 사무실의 사무국장에 맡겼는데 근로시간 부분까지도 임금 부분에 포함해 임금에 관한 것으로 PPT교안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근로시간에는 관심이 없다. 기껏해야 법정수당 산정기준이 되는 시간으로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얼마까지 근로해야 하는 것인지가 아니라,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서 사업장에서 근로시간을 살필 뿐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노조운동은 그렇다. 그렇게 오늘도 이 나라에서 임금·단체협상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우리의 노동현실을 보자면, 임금과 근로시간으로 나눠 노동법교육을 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근로시간 부분은 임금 부분에 포함해서 살피는 것이 적절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노동법이 근로시간을 임금과 나란히 별도의 장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고 해서 괜히 그렇게 해설해서 교육하는 것은 오늘 이 나라에서 적절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바로 이러한 생각에 나는 PPT교안이 내 교안 내용대로 제대로 편집하지 못한 것이지만, 우리의 노동현실에 부합하는 제대로 편집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3. 노동자 권리에 관한 우리 노동법 중 가장 중요한 조문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근로기준법 50조를 뽑겠다. 하지만 그것은 죽어버렸다.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 조문은 노동자의 노동시간에 관한 권리로 살아 있지 못하다. 이 조문에 따라 1주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해서 노동자가 근로할 수 없게 법이 집행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분명히 이를 위반해 1주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해서 노동자가 근로하면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의 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근로기준법 110조1호),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1주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해서 일하고 사용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이 50조의 근로시간 이내에서 노동자는 근로해야 한다고 근로기준법은 1주 40시간, 1일 8시간의 범위에서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소정근로시간을 정해 운영하도록 규정했다(2조1항7호). 이런 우리 노동법의 노동시간제로 보자면 우리 노동자는 1주 40시간, 1일 8시간 이내에서 일해야 한다. 국가가 법으로 최장의 근로시간을 정해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제도를 법정근로시간, 노동제라고 한다. 위 근로기준법 50조 규정을 읽어 보면, “ …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그 위반시 사용자를 형사처벌까지 해 불법과 범죄로 취급해 규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국가 대한민국이 노동자 최장 근로시간을 정한 법정근로시간, 노동제에 관한 규정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근로계약과 단체협약, 그리고 취업규칙 등에서 이를 초과해서 근로시간을 정한 경우에는 이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50조 위반으로서 효력이 상실되는 것이니 사용자가 노동자나 노조와 합의했다는 것이 그 책임의 면제사유로 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근로기준법 50조에서는 그 위반행위를 용서하는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본래 이 세상에서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근로계약과 단체협약, 그리고 취업규칙 등으로 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렇게 정한 근로시간을 규제하고자 근로기준법은 50조를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도 이렇게 근로기준법은 집행되지 않았고, 50조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됐다.

4. 핑계로 내세울 근거는 있었다.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53조가 근거였다. 사용자가 노동자나 노조와 합의하면 위 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해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니 사용자는 근로계약·단체협약 등 뭐든지 합의하고서 사용하면 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서 집행했다. 그렇게 고용노동부는 행정을 하고, 법원은 판결했다. 근대 이후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나 노조와 합의하지 않고서 사용자가 노동자를 강제로 사용하는 경우란 없다. 근로기준법 50조는 이런 세상을 전제로 한 법정근로시간, 노동제인 것이다. 근로계약·단체협약 등으로 당사자 간에 합의한 근로시간을 1주간 8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사자 간에 합의한 근로시간은 예외인 양 이 나라에서는 법을 집행했던 것이다. 법정근로시간, 노동제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50조와 53조를 읽어야 했음에도 그 몰이해로 53조로 50조를 죽여 사문화하는 것으로 해석 집행해 왔던 것이다. 이런 황무지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시간 단축을 외쳤던 것이고, 그것은 노동제가 아닌 임금인상으로 귀결됐다. 주 48시간에서 주 44시간, 그리고 주 40시간으로 단축돼 온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은 연장근로수당 같은 법정수당 산정기준이 되는 시간을 단축해 임금인상을 위한 것이 돼 버렸다. 50조를 법이 정한 최장의 근로시간으로 보고 있기에 당사자 간 합의로 그 범위 내에서 근로시간을 정하도록 소정근로시간제를 근로기준법은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50조를 법정근로시간으로 보지 않으니 이 나라에서는 소정근로시간제는 유명무실한 노동자의 근로시간제가 돼 버렸다.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과 단체협약을 체결한 수천개 사업장에서 법이 정한 대로 소정근로시간을 규정해서 1주 40시간, 1일 8시간 이내에서 노동자가 일하고 근로계약이든 단체협약이든 뭐든 이를 초과해서는 일하지 않도록 한 경우는 찾을 수 없다. 독일 등 소정근로시간이 기능하는 나라들처럼 단체협약에서 법정근로시간보다 단축된 시간을 최장의 근로시간으로 정하고서 그 시간까지만 노동자들이 일하도록 하는 걸 찾아 볼 수가 없다. 근로기준법 50조가 법정근로시간, 노동제로 기능하지 못하니 이를 전제로 하는 소정근로시간제도 기능할 수가 없는 것이다. 법정근로시간도 소정근로시간도 엉망이 돼 버린 것이다. 그리고, 2018년 연장근로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있었다. 그것은 엉망진창인 이 나라의 근로시간제의 민낯을 드러냈다. 노동자의 연장근로시간을 규제하겠다면서 1주일은 일요일 등 휴일을 포함한 7일이라고 규정하는 황당 입법을 했다. 일요일 등 휴일을 포함해서 1주일은 7일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누구나 알고 있고 당연히 그걸 전제로 근로기준법 50조와 53조 등은 근로시간제를 규정한 것이다. 오직 일요일 등 휴일근로는 1주간의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행정해석한 노동부만이 몰랐다. 그러니 노동부의 무지한 행정해석을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걸 전제로 노동법을 개정하는 입법행위를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벌이고 말았으니 나는 황당했다.

5. 근로기준법 50조를 읽을 때마다 막막하다. 노동제에 대한 무지가 엉터리 해석을 낳고 다시 황당한 입법으로 나아갔던 이 나라 노동법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근로시간에 관해서 지꺼릴 때면 나는 비판으로 흥분하게 된다. 그러니 이번 민변 노동법교육은 텅 빈 교육장에서 한 강의였지만 열 받은 것처럼 내 썰을 풀어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 50조를 살려내 이 나라에서 노동제와 법정근로시간이 노동자 권리가 되도록, 그 방법을 찾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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