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금융노조 JT저축은행지회가 지난 8월10일 금융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계 금융자본 J트러스트의 JT저축은행 매각 시도는 졸속적인 먹튀 행각이라고 규탄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글로벌 금융자본이 한국 내 자산매각을 결정하고 저축은행을 매물로 내놓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노동자는 무슨 내용이 어떻게 논의되는지 알지 못했다. 협상 대상자는 사모펀드 일색이었다. 구조조정 걱정은 커졌다. 노동자들은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요구했다. 파업도 했다. 2014년, 일본계 금융그룹 J트러스트그룹으로 매각을 앞뒀던 당시 SC저축은행의 분위기다.

당시 상황은 5년여 만에 반복되고 있다. J트러스트그룹은 2015년 1월1일 SC금융지주로부터 인수한 JT저축은행을 최근 또다시 매물로 내놓았다. 인수 당시 500억원이던 매각대금은 최소 1천500억원으로 뛰었다. 지난달 15일 본입찰 결과 협상 대상자는 사모펀드만 남았다. 구조조정 걱정이 커졌다. 노조는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줄곧 요구했지만 교섭 테이블은 꾸려지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 노조는 경고성 하루 파업을 할 정도로 투쟁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그런 시도조차 꿈꾸지 못한다. J트러스트그룹으로 인수된 뒤 5년, 노조는 힘이 빠졌다. 직원은 늘었는데 조합원은 되레 줄어서다. 5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회장 사찰 의혹에 협상장서 ‘막말’까지

이곳 노동자들은 지난 5년이 노조탄압으로 점철됐다고 강조한다. 사무금융노조 JT저축은행지회(지회장 이진한)에 따르면 인수 이듬해인 2016년 지회장 사찰로 의심되는 행위가 있었다. 노조 가입을 방해한 정황도 있다. 지회는 같은해 11월15일 회사쪽에 답변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지회는 공문에서 “귀측 인사본부 담당자가 (2016년) 10월19일 오전 10시께 본점 2층 CCTV 담당자에게 지난 10월11일과 13일 이진한 지회장의 동태를 확인해야 한다며 CCTV 영상을 열어 봤습니다. 귀측의 이러한 행위가 사측의 조직적 결정에 의한 것인지, 어떠한 의도에서 진행된 것인지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끝이 아니다. 지회는 이어 “최근 HR(인적자원관리)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A과장이 B직원에게 본인이 인사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노조에 가입할 경우 불이익이 있을 거라고 여러 차례 언급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A과장이 귀측과 관련돼 언급한 것이 사실인지, 귀측이 A과장을 통해 노조 가입시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언급하도록 지시한 사항이 있는지, A과장이 일련의 행위에 대한 귀측의 입장은 무엇인지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물었다. 답변은 받지 못했다.

갈등은 연말에도 이어진다. 지회가 그해 12월23일 회사쪽에 보낸 공문 내용이다. “지난 12월8일 열린 귀측의 계열사인 JT친애(저축은행)와 JT친애지회와의 20차 실무교섭에서 그룹노무관리 책임자인 서아무개 부장은 ‘내가 장담하건대 다음번 교섭 때 이진한 지회장이 가진 타임오프를 반드시 뺏어 오겠다. 단체협약을 해지하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뺏어 오겠다’ ‘이진한 지회장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마라. 화가 치밀어 오르고 분개한다’고 했습니다. 귀측은 서 부장의 발언이 귀측 대표이사와 공식적으로 논의된 사항인지 여부를 반드시 우리 지회에 알려 주시고 만약 공식적으로 논의된 사항이라면 노사 간의 상생 원칙과 사내질서를 심각히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지회는 강력 투쟁을 전개할 것이고 사적인 발언이라면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조치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이번에도 답변은 없었다.

비정규직이 절반인 회사
노동자 10명 중 4명 “떠나고 싶다”


이 기간 동안 비정규직은 꾸준히 늘었다. JT저축은행의 과거 자료를 보면 인수 당시인 2015년 비정규직 비율은 21%였다. 인수 직후인 2016년 30%로 올랐고, 이듬해 39%로 늘었다. 2018년에는 파견직을 포함해 50%까지 치솟았다. 비정규직은 콜센터 등을 비롯해 간부나 팀장급 관리자까지 직급을 가리지 않고 분포해 있다.

임금인상은 억제됐다. 이진한 지회장은 “임금이 업계 최저수준”이라며 “일부 계약직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5월24일 지회는 회사쪽과 만나 임금교섭을 시작했다. 지회는 11% 인상을 요구했다. 한국은행의 2017년 소비자물가 인상률 1.8%와 경제성장률 2.5%, 노동소득분배율 인상분 6.7%를 합한 수치다. 당시 JT저축은행 임금은 업계 평균과 격차가 27%나 됐다. 노동자 1명당 약 1천500만원을 덜 받고 일했다. 그러나 교섭 결과는 3.5% 인상에 그쳤다.

소폭 인상 이후 회사는 돌연 새로운 인사평가 제도를 꺼내 들었다. 전체 노동자를 S등급(10%)·A등급(20%)·B등급(40%)·C등급(20%)·D등급(10%)으로 나누는 내용이다. 이른바 ‘신인사평가제도’다. 회사쪽은 급속히 성장한 자산 규모(1조원)에 걸맞게 전체 직원이 성과목표 달성에 복무해야 하고,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 노동자에게 더 많은 보상과 기회를 부여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실상은 달랐다. 저성과자 비율을 늘려 고성과자에게 과실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2016년 C등급 12%, D등급 1.4%였던 것과 비교하면 저성과 등급(C·D) 비율은 30%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성과급도 지급을 중단했다. 대기발령과 성과개선 프로그램 등으로 노동자 퇴출마저 우려됐다. 박근혜 정부 고용노동부가 시행한 2대 지침(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었다. 지회는 노동자 간 과당경쟁이 발생하고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며 협의를 제안했지만 회사쪽은 거부했다.

쥐어짜기 경영 덕일까. J트러스트그룹은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올렸다. 약 230억원이다. JT저축은행이 업계에서 ‘알짜’라는 소문이 난 배경이다.

그러나 그 ‘알짜’ 기업을 다니는 노동자들은 회사를 떠나고 싶어 했다. 노조가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10명 중 4명(41.6%)은 “심각하게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J트러스트그룹이 인수한 지 5년, JT저축은행의 현주소다.

“J트러스트 목표는 매각차익 국외 유출”

노동자들은 JT저축은행을 사모펀드가 인수하면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진한 지회장은 “재매각을 통한 매각차익 확보가 주목적인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체협약에 명시한 노사 간 협의조항을 무시하고 오직 대주주와 매각주관사만 정보를 독점한 채 대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며 “J트러스트의 목표는 밀실매각을 통해 매각차익을 최대화하고 그 자금을 신속히 국외로 유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사모펀드 인수를 저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JT저축은행 본입찰에는 뱅커스트릿프라이빗에쿼티 등 사모펀드 두 곳만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J트러스트그룹이 이 가운데 한 곳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 남은 절차는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뿐이다. 그러나 국내 심사 규정상 외국자본의 ‘먹튀’를 방지하거나 노동자 노동조건 보장·고용안정 조치는 심사항목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진한 지회장은 “사모펀드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 온 힘을 다해 저지투쟁을 할 것”이라며 “금융위는 지금이라도 입장을 밝히고 사모펀드의 JT저축은행 인수 불허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JT저축은행 관계자는 “사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지회가 사찰로 인식하는 문제가 회사와 다를 수 있어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지회를 탄압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인수에 관해 지회를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소식을 공유하고 있고, 지회가 우려하는 고용승계 문제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지점이 있지만 회사쪽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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