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연대노조가 지난 2월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원청에 교섭 참여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CJ대한통운과 직접 업무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택배기사들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CJ대한통운의 교섭 의무를 인정한 것으로 원청이 교섭에 응할지 주목된다.

27일 택배연대노조와 전국택배노조,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장낙원)는 지난 24일 CJ대한통운과 대리점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교섭요구사실의 공고에 대한 시정 재심결정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3부·12부·14부) 판결의 연장선상이다. 앞선 판결은 대리점 소속 기사들에 대한 판결로 대리점주의 교섭의무를 인정했고, 이후 해당 대리점주들은 교섭요구 사실 공고문을 부착하고 노조와 교섭을 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CJ대한통운이 원고로 참여해 나온 첫 판결이다. CJ대한통운과 대리점은 2018년 중앙노동위원회가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라고 시정명령을 하자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직계약기사와 대리점기사 다르지 않아”

이번 판결이 지난해 판결과 다른 점은 28개 대리점 소속 기사뿐 아니라 CJ대한통운과 직계약해 업무를 위탁받아 일하는 ‘직계약기사(개별집배점주)’에게도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한 것이다. 직계약기사는 2013년 대한통운과 CJ가 합병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대리점(일반집배점)주 전환을 거부한 대한통운 소속 노동자 100여명이 합병 뒤 CJ대한통운과 직접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직계약기사로 전환됐다. 직계약기사는 대리점주가 가져가는 중간 수수료가 없어 대리점 소속 기사들보다 건당 수수료가 높다. 근로형태나 업무 방식은 대리점 소속 기사와 큰 차이가 없다.

전국택배노조를 대리한 박삼성 변호사(WF법률사무소)는 “자세한 내용은 판결문을 봐야 알겠지만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일반집배점에 소속된 택배기사와 개별집배점주(직계약기사)의 근무조건은 사실상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CJ대한통운은 회사가 부여한 동승코드로 직계약기사가 직접 제3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승코드를 직계약기사 사용자성을 충족하는 요소 중 하나로 본 것이다. CJ대한통운쪽 변호인단은 “개별집배점주(직계약기사)는 운송계약의 이행과 관련한 사항을 스스로 결정하고, 손익의 위험을 스스로 부담한다”며 “대리점주와 동일한 독립적 상인”이라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원고(CJ대한통운)가 주장하는 제3자가 택배기사와 택배차량에 동승해 함께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대부분은 배우자 등 가족으로 택배기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CJ대한통운에 교섭 요구할 것”

법원 판결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직계약기사의 사용자로서 교섭에 응해야 한다. 그동안 택배연대노조는 “택배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장시간 노동 문제, 분류작업 개선문제, 택배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CJ대한통운이 갖고 있다”며 “택배노동자의 진짜 사장으로서 자기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교섭을 요구했다.

CJ대한통운이 교섭에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리점주들은 중앙노동위원회의 교섭요구사실 공고 시정명령에 불복해 제기했던 행정소송이 1심에서 패하자 항소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CJ대한통운도 항소할 가능성이 크다.

조세화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전국 물류시스템을 좌우하는 CJ대한통운의 교섭의무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 변호사는 “택배기사가 대리점하고 교섭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며 “CJ대한통운의 직계약기사와의 교섭의무가 인정된 것으로 실제 교섭이 이뤄져 단체협약을 맺게 되면 (개선된 근로조건이) 표준화돼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인봉 전국택배노조 사무처장은 “CJ대한통운 본사를 상대로 교섭할 수 있는 노동자성이 인정됐다”며 “추석연휴가 지난 뒤 교섭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