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조폐공사가 노동자에게 건넨 합의문. 1천215만원을 지급하는 대신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것을 종용하는 내용이다. <공공연대노조>

한국조폐공사가 여권발급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지 않고, 언론과 정치권에 제보하지 말 것을 담은 합의서를 받아 빈축을 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지원금이라며 1천200여만원을 일시에 지급하면서 이런 조건을 내건 것이다.

공공연대노조가 27일 이런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공개했다. 노조는 “공사가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공사의 사과를 요구했다. 공사는 여권발급 비정규 노동자 개인별로 합의서를 받았다.

공사는 합의서에서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일감이 대폭 줄어드는 가운데 소형 여권발급기로 발급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의 고용불안이 제기된 상황임을 감안해 직원에게 일정한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면서 고용계약의 내용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로 제시했다. 기왕분과 장래분으로 지급한다는 ‘경제적 지원’은 실상 미지급 임금이다. 여권발급 노동자들은 지난달 노조에 가입하면서 정규직 전환과 미지급 수당 지급을 요구했다.

공사는 여권발급 노동자가 일용직이라는 입장이다. 일용직은 계속근로가 전제되지 않아 원칙적으로 주휴수당 등 수당지급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근로계약서상 고용형태도 ‘일일단위 근로계약’이라는 것이다.

공사는 2007년부터 외교부에서 여권발급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공사는 여권을 발급하는 노동자들은 일용직으로 채용했다. 노동자들은 처음 출근할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뒤 다음 날부터 임금 등에 변동사항이 없을 경우 매일 일용근로자 연명부에 서명했다. 연명부가 일일근로계약서인 셈이다. 노동자들은 지난해부터 네이버밴드를 통해 전날 출근 여부를 통지받고 있다.

노조는 공사가 인건비 최소화와 책임 회피를 위해 정규직 일자리를 일용직화했다고 주장한다. 공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서 정한 2년 사용기간제한 규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22개월 정도가 되면 일을 그만두게 했다. 여권발급 노동자로 지난 18일까지 일한 송은영씨는 22개월을 근무하고 몇 달간 일을 쉬는 행위를 2011년부터 세 번 반복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런 행위를 5번 반복한 노동자도 5명이다.

오현규 노조 대전지부 사무국장은 “합의금은 수당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나온 이야기”라며 “근속연수 등에 따라 지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권발급 업무는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고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시·지속적 업무”라며 “정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여권발급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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