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 법은 산업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

올해 시행된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 1조다. 이 조항은 산업안전보건법이 그동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보호하던 것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법으로 바뀌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과연 산업안전보건법은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법이 되고 있는가.

김용균법 시행됐지만…
2년 전 그가 숨진 발전소에서 특수고용직 목숨 잃어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되면서 77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등)가 신설됐다.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노동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해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음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특수형태근로종사자)”을 대상으로 산재예방에 필요한 안전조치와 보건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처음으로 특수고용직의 안전·보건 조치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특수고용직의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2년 전 하청노동자 김용균씨가 숨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특수고용직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0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화물노동자 이아무개씨가 화물차에 실린 스크루 컨베이어를 로프로 고정하던 중 굴러 떨어진 스크루에 깔려 병원 이송 중 숨진 것이다. 서부발전은 스크루 정비를 신흥기공이라는 하청업체에 맡겼고, 신흥기공은 다시 스크루 운반을 특수고용 화물운전자 이씨에게 외주를 줬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에도 위험의 외주화는 끝나지 않고, 하청업체로 외주화한 위험이 특수고용직으로 또 한 번 외주화되는 현실이다.

220만 특수고용직 중 49만명만 보호하는 이상한 법

올해부터 시행한 산업안전보건법 77조는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우선 적용 대상부터 매우 제한적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 특수고용직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적용을 받는 일부 9개 직종에 불과하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이씨 역시 화물운전자로 해당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166만~221만명 규모의 특수고용직 중 산업안전보건법 77조 적용을 받는 9개 직종은 49만명으로, 적어도 70%의 특수고용직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적용 대상뿐만 아니라 적용범위도 매우 좁다. 산재예방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건강진단을 보자.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건강관리를 위해 사업주에게 건강진단 의무를 부과한다. 보통 사무직은 2년마다 한 번씩, 그 외 직종은 1년에 한 번 이상 건강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또 위험한 화학물질이나 야간작업 같은 유해인자에 노출될 경우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건강진단 대상은 ‘상시 사용하는 근로자’로 한정돼 있다. 특수고용직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건강진단은 직업병을 예방하고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만드는 관문 같은 역할을 한다. 모든 산재예방 사업의 기본 중 기본인데도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소외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특수고용직의 건강실태가 어떤지, 직업병이나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나 조치가 필요한지 알려지지 않는다. 진단을 안 하니, 처방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건강진단은 모든 국민의 권리
특수고용직엔 ‘그림의 떡’


건강검진은 모든 국민의 권리다. 그래서 건강검진기본법을 별도로 제정해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특수고용직의 건강진단은 일부 지자체에서 이제야 현실화하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로 10년 가까이 일한 이창배 전국대리운전노조 사무국장은 지난해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는 “대리운전 기사는 야간에 일하고 주간에는 잠을 자기 때문에 건강검진을 하려면 하루 일당을 포기해야 한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 보면 건강검진을 받을 시기를 놓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가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서울시가 지난해 6월1일부터 ‘서울형 유급병가지원’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급병가지원 제도는 유급휴가가 없어서 아파도 치료받지 못한 일용노동자나 특수고용직, 영세 자영업자에게 연간 최대 11일간 서울시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이 사무국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아도 서울시에서 ‘유급병가’ 지원금을 받는다”며 “지금은 서울시에 국한돼 있는데 전국의 대리운전 기사들도 제때 건강검진을 받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상병수당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대리운전 기사 20여명은 지난 17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다. 경기도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의 지원을 받아 근골격계질환과 뇌심혈관계질환 발병 위험도 평가를 받고 건강상담도 했다.

문제는 특수고용직 건강진단은 누구나 누리는 보편적 권리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시혜적 지원사업이라는 점이다. 지자체장이 바뀌거나 지방의회 구성이 달라지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특수고용직 안전·보건 비용 정부 지원 명시
산업안전보건법 77조 이행, 정부 먼저


특수고용직의 산재 관련 논의는 수년째 산재보험 가입 범위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사업주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전속성’ 울타리에 갇혀 있다. 그런데 산재보상은 산재가 일어난 이후의 문제다. 산재보상보다 중요한 것은 산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다. 특수고용직 산재를 둘러싼 논의가 산재예방 제도와 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산업안전보건법 77조가 내실 있게 구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직업환경의학전문의)은 “특수고용직을 산업안전보건법 테두리로 끌어온 것 자체는 큰 진전이지만 하위법령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이 정해지지 않은 한계가 있다”며 “정부는 물론 노동계도 디테일하게 특수고용직이 안전·보건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 77조3항에는 “정부는 특수고용직 안전 및 보건 유지·증진에 사용하는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사용자를 특정할 수 없어 특수고용직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선 정부가 나서서 필요한 조치부터 할 수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지난 4월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특수고용직이 많은 서비스부문에 새로운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안전보건 강화 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5개월이 지난 지금, 이 합의가 얼마나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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