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노동자들이 지난 16일 경기도 군포 롯데택배터미널에서 간선차량에서 택배화물을 내리고 있다. ‘까대기’라고 부르는 작업이다. 정기훈 기자

“(몸무게가) 원래 100킬로그램이 넘었는데 택배 시작하고 30킬로그램이 빠졌어요. 5개월 만에요. 다들 병 걸린 거 아니냐고 걱정했죠.”

8년차 택배노동자 김기훈(가명)씨가 배송할 물건을 차에 싣다 슬쩍 쳐다보곤 말을 이었다. 코로나19로 물량이 증가하고, 장시간 노동이 계속된 최근 3~4킬로그램이 더 빠졌다고 했다. 1미터8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키의 그는 한눈에 봐도 마른 편이다. 점심도 거른 채 하루 14~15시간 가까운 노동이 이어진 결과다.

김씨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16일 경기도 군포 롯데택배터미널. 이른 아침부터 분류작업을 한창하던 택배노동자들이 여기저기서 “저도 1년 만에 12킬로그램 빠졌어요” “형도 20킬로그램 빠졌잖아요” 하며 ‘의도치 않았던 체중감량’ 경험을 잇따라 늘어놓았다.

코로나19에 명절 특수까지 겹쳐 늘어난 물량에, 자꾸 늦어지는 분류작업까지 최근 이곳 택배노동자들은 정오 혹은 오후 1시 넘겨 터미널을 출발하는 일이 잦아졌다. 늦게 배송을 시작하니 퇴근시간도 늦어졌다. 물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자정이 넘어 퇴근했다는 사람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과로사’는 어느새 턱 밑으로 다가와 이들의 삶을 위협했다.

“쓰러진 노동자만 세 명”

“지금도 물건을 싣고 온 간선차가 30~40대 밀려 있어요. 언제 간선차 물건 하차가 끝날지 몰라요. 오죽 답답하면 손수레로 물건을 끌고 오겠어요.”

택배노동자의 출근시간은 아침 7시. 일을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났지만 간선차에서 물건을 하차하는 작업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하영수(가명)씨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곳 롯데택배터미널은 허브터미널과 서브터미널 기능을 겸한다. 간선차 수십 대가 터미널에 접안해 물건을 상·하차하는 탓에 택배차량이 접안할 공간이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택배노동자들은 인근 노지와 도로에 줄지어 차량을 세웠다.

“조금이라도 일찍 끝내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강석우(가명)씨가 상황을 설명했다.

간선차에서 내려진 물건은 휠소터로 1차 분류 작업을 마치면 출고장에서 컨테이너박스에 옮긴다. 이 컨테이너박스를 화물트럭이 택배노동자 인근으로 옮기면 택배노동자들이 손수레를 이용해 직접 택배차량으로 물건을 옮겼다.

“여긴 원래 도로라 사용하면 안 돼요. 장소가 없어서 쓰는 거죠. 처음에는 주차단속 나오고,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요. 눈이나 비올 때면 정말 최악이죠. 박스가 다 젖으니 화물차가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오후 4시 넘어 배송 나가는 일이 생기기도 하죠.”

박성목(가명)씨의 말이다. 수개월째 이어 온 노지 작업 탓에 택배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각자 위치를 찾아 역할을 수행했다. 사람 두 명의 키보다 큰 대형 컨테이너 안에 두세 명의 노동자가 들어가 물건을 아래로 전달했다. 누구의 물건인지 확인하려 몸을 굽히고 펴기를 반복했다. 아래 대기하던 동료는 물건을 받아 옆 동료에게 전달했다. 추석을 앞둔 터라 중량물인 선물세트가 많았다. 종종 한숨이 흘러나왔다.

손수레 위 허리보다 높게 쌓은 물건이 쏟아질까 봐 택배노동자는 조심조심 수레를 끌었다. 이날 기훈씨가 배송할 물량은 360개지만, 출근한 지 세 시간이 지난 오전 10시까지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 김씨는 “원래 터미널 안에서 레일 옆에서 분류작업을 하면 2시간~2시간30분이면 끝날 일을 5시간 넘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년차 택배노동자 이시혁(가명)씨는 은어 ‘잔바리’라고 불리는 배송물품들을 손수레에 싣고 나왔다. ‘잔바리’는 크기가 작아 포대 자루에 담겨 간선차에 실리는 물건들을 의미한다. 터미널 안에서 쪼그려 앉아 손수 분류한 것이라고 했다.

“물량 넘치는 화요일, 5시간도 채 못 자”

분류작업 지연 탓에 택배노동자들은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시달렸다.

“어제 집화한 것을 터미널에 내리니 자정이 넘었어요. 집에 가니 밤 12시50분, 씻고 밥 먹으니깐 새벽 1시30분. 자고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오늘 출근한 거예요.”

이시혁씨는 간밤에 4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했다. 물량이 가장 많은 화요일은 고됐다. 자정 넘어 일을 마친 이씨의 노동시간은 17시간에 육박했다. 요일별 물량 변동 폭이 크지 않은 요즘 주 6일 근무를 하는 택배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주 70시간을 넘는다는 실태조사 결과는 현실이다.

분류작업이 한창이던 또다른 공간. 이곳은 수동레일을 깔고 물건을 옮겼다. 성인 남성 허리에도 못 미치는 레일을 손수 움직이느라 허리를 펼 때보다 굽힐 때가 더 많았다.

“작업하기 더 편한 높이요? 그런 거는 바라지도 않아요. 레일이 오래돼서 밀리지도 않아요.”

수동레일 곳곳은 붉게 녹이 슬어 있다. 강석우(가명)씨는 “분류작업이 늦게 끝나면 시간 압박을 받으니 걸어 열 걸음 가야 할 것을 두 세 걸음에 뛰어가곤 한다”며 “점심 먹을 생각은 꿈도 못꾸고, 시간에 쫓기니 운전도 험해진다”고 했다. 강씨는 “고객이 계속 전화하고, 재촉하니 빨리 분류해서 출발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10년차 베테랑도 늦어지는 분류작업에 퇴근 지연은 어쩔 도리가 없다. 박대선(가명)씨의 지난 15일 첫 배송은 오후 2시. 배송을 모두 끝낸 뒤 집에 돌아가 저녁을 챙겨 먹으려 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잠이 들었다고 한다. “오늘도 이게 마지막 끼니가 될 걸요.” 손수레 위에 걸터 앉아 박씨는 삼각김밥을 욱여넣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법정 하루 근로시간은 8시간으로 주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허용한다. 택배노동자의 일일 근로시간은 그 두 배를 웃돌지만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제동을 걸 규제는 없었다.

“코로나19로 물량 급증했는데
간선 상하차 인력은 줄었다”

▲ 물류터미널 접안시설에는 간선차량이 가득찼다. 빠지길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길가에서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분류작업 지연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복합적이다. 택배산업 성장과 함께 물량은 자연증가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배송량이 폭증했다. 롯데택배는 지난해보다 물량이 20% 정도 늘었다.

문제는 물량만이 아니다. 택배노동자들은 “간선차 하차 인력을 공급해 주는 도급업체가 인력을 줄여 문제가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하영수씨는 “회사는 간선차 하차 인력이 증원됐으니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어제 집화한 물건을 가져다 놓으려 터미널에 와 보니 상하차 인력은 여전히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견디다 못한 군포 롯데택배터미널 노동자들은 지난달 20일 “간선차 하차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간선차를 막아섰다. 당시 도급업체는 화요일 오전 10시30분, 수요일 오전 9시30분, 목요일 오전 8시, 금·토요일 오전 7시에는 상·하차 작업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강석우씨는 “회사는 ‘인력이 없다’ ‘기계가 고장났다’ ‘인력은 있는데 초보자들이라 늦는다’며 다양한 이유를 대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간선차 하차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용직인 간선차 상하차 인력이 다음날 출근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시혁씨는 “일을 하면 쉬어야 하는데 (상하차 인력은) 전날 오후 4시30분에 나와 다음 날 정오나 오후 1시까지 일을 시키니 또 나올 사람이 누가 있냐”고 되물었다. 그는 “그러니 경력이 없는 미숙련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고, 결국 작업이 지연된다”고 지적했다.

‘반도TS’는 롯데택배와 도급계약을 맺고 간선 상·하차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을 공급한다. 노동자 대부분은 일용직이다. 인건비를 최소화하려는 택배사는 물량에 맞춰 인력을 수급한다. 안정적인 인력공급이 이뤄질 수 없는 구조적 이유다.

롯데택배 군포지점 관계자는 “물량이 늘면서 상하차 인력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다”며 “기계도 주기적으로 정비를 해야 하는데, 물량이 늘어 계속해서 돌아가다 보니 자동레일이 망가지는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1일부터 파주서브터미널이 오픈한다”며 “20%가량의 물량이 분산돼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과로사, 남 일 같지 않아”

“얼마든지 저한테도 일어날 수 있죠. 내 몸 혹사시켜야만 할당량을 채울 수 있으니까요.”

최근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대한 생각을 묻자 박대선씨가 주저 없이 답했다. 그는 “10년 넘게 택배일을 하는 동안 지인 세 명이 죽었다”며 “저도 매일 11~12시간 일하다 보니 간이 피로를 못 버텼는지 배송 중 차에서 내리다 쓰러진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택배노동자 대답도 다르지 않았다. 한 노동자는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나도 갑자기 쓰러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최근 택배연대노조와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발표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821명의 택배노동자에게 ‘과로사’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응답자 중 80.4%(633명)가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므로 많이 두렵다”고 답했다. 과로사를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택배노동자는 1.8%(14명)에 불과했다.

“저희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제일 힘든 건 고객들이 우리 상황을 몰라 주는 거예요. 밤 늦게 배송 가면 ‘왜 이제 오냐’고 하고, ‘왜 평소보다 배송이 늦냐’고 재촉해요. 그냥 고객들이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라도 알았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택배노동자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마지막 바람을 이야기했다.

 [“아파도 웬만하면 참고 일해요”]
전면개정 산업안전보건법, 택배현장에선 무용지물
노동·시민·사회단체 “정부, 특별근로감독으로 현장 점검해야”

“몸이요? 안 아픈 데가 없죠.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쑤셔요. 족저근막염 때문에 병원 가고, 제 친구는 허리디스크 걸려서 병원을 수시로 가요. 매일 무거운 것 들고, 배송시간 맞추려고 뛰니 몸이 성할 날이 없어요.”

14년차 롯데택배 노동자 강석우씨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매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간선차 물건 하차작업이 지연되면서 택배노동자들이 터미널 내 작업공간을 확보하지 못하자 노동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눈이나 비를 가려 줄 지붕이 없는 땅바닥에서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하는 유해요인인 부자연스러운 자세·과도한 힘 사용은 택배노동자에게 일상이었다. 높이 적재된 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팔을 어깨 위로 올리는 동작, 땅바닥에 놓인 화물을 들어 올리려 허리 굽히기, 무거운 물건 들어올리기 등이 수시로 나타났다.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부개정되면서 특수고용직에게 노무를 제공받는 사업주는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이 같은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켜지지 않는 규격에 심화하는 노동강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657조(유해요인 조사) 1항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근골격계부담작업을 하는 경우에 3년마다 다음 각 호의 사항에 대한 유해요인조사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조사 결과 근골격계질환 발생 우려가 있으면 작업환경 개선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수고용직에게도 해당하는 규정이다.

그런데 택배사는 자체적으로 정한 물품 규격조차 지키지 않았다. 택배노동자들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롯데택배 노동자 김기훈(가명)씨는 “세 변의 합이 160센티미터, 한 변의 길이가 120센티미터를 넘으면 안 된다”며 “무게는 일반 상품의 경우 25킬로그램, 식품은 20킬로그램을 초과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저울을 가지고 다니면서 재야 하는데 그렇게는 안 한다”며 “가늠을 못하니 웬만큼 무거워도 일단 다 가지고 나간다”고 덧붙였다. 택배사 운임은 물품 규격·배송거리·물품 특성별로 달리 측정하지만 롯데택배 노동자가 가져가는 돈은 건당 수수료 800~900원으로 동일하다.

택배업계 1위 회사 CJ대한통운 사정도 다르지 않다. CJ대한통운은 물품 크기와 무게에 따라 극소형·소형·중형·대형을 나눠 운임을 달리 받지만 대형 규격(세 변의 합 160센티미터, 25킬로그램 이하)을 벗어나는 상품이 적지 않다. 택배노동자 이재현(42·가명)씨는 “규격 초과 여부는 딱 보면 안다”면서도 “규격을 지키며 물건을 접수하면 우리 택배사(CJ대한통운)와 거래를 안 하니까 계속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아파도 병원 안 가, 진통제로 버텨”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택배노동자는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지도 않고, 몸에 뚜렷한 이상신호가 와도 병원 가는 일을 미룬다. 이재현씨는 “마지막 병원을 언제 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아프지만, 일하다 보면 아픈 것도 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프면 진통제를 먹는다”고 했다.

14년째 CJ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일하는 원영부 택배연대노조 부위원장은 최근 인대파열을 진단받고 반깁스를 했다. 그는 “약을 처방받아도 낫지 않아 MRI를 찍어 진단을 받았다”며 “끊어지지 않게 하려면 무거운 것을 들지 마라는데, 사람 쓰면 돈을 줘야 하니 일할 때는 반깁스를 잠시 풀고 몸 덜 쓸 때는 다시 반깁스를 한다”고 전했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노동자는 연차·병가를 사용할 수 없다. 대신 일해 줄 사람(용차)을 구하려면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한다. 배송구역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운 경력의 롯데택배 노동자 박대선(가명)씨는 택배를 시작한 지 10년차 되던 때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봉합수술을 받고 3개월을 쉬어야 했다. 당시 박씨는 물량 중 절반은 퀵으로 보내고, 절반은 동료에게 부탁해 간신히 구역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실로 묶어 놓은 상태로 무리하면 언제고 끊어질 수 있다고 해서 조심은 하고 있다”며 “허리디스크 때문에 신경주사 치료를 20번 넘게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7월1일부터 택배노동자를 포함함 5개 특수고용 노동자도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 됐지만 일을 중단하면 벌이가 끊겨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원영부 부위원장은 “산재를 신청하면 입원이든 통원치료든 해야 하는데 그러면 일을 하기 힘드니까 웬만큼 심하지 않으면 신청을 못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택배노동자 안전보건 실태를 전면 감독해야 한다는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가 메아리에 그치지 않길, 택배노동자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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