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들이 끝내 분류작업 거부를 선언했다. 원인은 장시간 노동과 과로다. 노동·사회단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택배노동자들은 일주일에 71시간이나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 앞으로 뚜벅뚜벅 걷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전문가의 말이 심각성을 방증한다.

마침 국토교통부는 ‘추석명절 성수기·코로나 대응 택배물량 관리강화 및 종사자 보호조치’를 택배사에 권고했다. 집권여당 대표와 대통령은 추가대책을 주문했다. 과로사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택배노동자 호소가 그들만의 이기적 요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와 택배사는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할까.

추가 인력투입과 수수료 인상, 재벌 택배사가 답해야
김세규 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국장

▲ 김세규 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국장

지난 16일 롯데택배 송파지역을 배송하는 한 택배노동자는 오후 5시까지 분류작업을 했다. 터미널을 나와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첫 배송을 시작했다. 밤 12시가 지나서야 배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노동자는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분류작업을 위해 오전 7시까지 터미널로 가야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도 택배노동자는 주당 평균 71.3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물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9·10·11월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언제 쓰러지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

택배노동자가 하루 13~16시간의 장시간을 노동을 하는 것은 바로 분류작업 때문이다. 분류작업이 늦어지다 보니 밤늦게까지 배송을 할 수밖에 없고, 다시 분류작업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택배노동자의 하루 절반가량의 업무가 분류작업인데 정작 분류작업은 한 푼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 공짜노동이다.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사를 막기 위해 한시적이나마 분류작업에 인력을 투입해 줄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분류작업 문제를 개선하는 것과 함께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십년간 단 한 푼도 오르지 않고 줄어들고 있는 배송수수료를 인상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재벌 택배사들이다. 코로나19로 사상 유례없는 떼돈을 벌고 있음에도 택배노동자 처우개선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분류작업 인력투입에 대해 주무부서인 국토부가 권고하고, 대통령까지 요청했지만 택배사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와 택배연대노조는 21일부터 분류작업 전면거부에 돌입한다. 택배노동자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보면서 나도 이러다 쓰러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고 있다. 공짜노동 분류작업 전면거부는 살기 위한 마지막 호소다. 주변 택배노동자에게 응원의 인사를 나눠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더 이상 과로로 쓰러지는 택배노동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

택배사는 인력충원, 정부·국회는 사회적 협의체 구성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

▲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

일상생활에서 하루에 만보 걸으면 많이 걸었다고 한다. 택배노동자는 하루에 얼마나 걸을까. 어느 택배노동자의 만보기에 3만5천보가 찍혔다. 평지도 아니다. 무거운 택배 물건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3만5천보를 걷는다. 누군가의 1만보는 건강의 길이지만, 누군가의 3만5천보는 죽음의 길이다.

지난 10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발표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는 말한다. 3만5천보는 결코 예외적이지 않다고. 택배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약 3천700시간으로 한국 노동자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사고재해율(4일 이상 요양이 필요한 상해 기준)은 25.9%로 한국 노동자 평균의 50배 이상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이미 나와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수없이 요구해 왔듯이, 택배사는 택배 업무량 중 40% 이상을 차지하는 ‘공짜노동’ 분류작업을 전담할 인력을 마련해야 한다. 택배사가 분류작업 전담인력을 마련할 여력은 차고 넘친다. 국내 택배시장을 절반가량 점유한 CJ대한통운의 올해 2분기 순이익은 36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배 이상 증가했다. 택배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호황기를 맞은 택배사들은 영업이익 일부를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멈추는 데 사용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토교통부는 추석기간 배송물량 폭주에 대비하기 위해 택배사들에 분류작업 인력충원을 권고했다. 정부는 권고를 넘어 택배사들이 분류작업 전담인력을 마련하게 강제할 방안을 강구하고, 근본적인 과로사 방지책 마련을 위해 민관공동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국회는 택배노동자 권익보호 내용을 담은 ‘생활물류서비스발전산업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나아가 택배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조법 2조를 개정해야 한다. 택배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은 장시간 노동 근절을 포함해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택배노동자 4천여명이 '살기 위해' 분류작업 거부를 결정했다. 택배노동자들의 호소에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3만5천보, 죽음의 길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택배기사는 배송업무만, 택배사는 직접고용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택배 과로사에서 가장 큰 쟁점은 노동시간 문제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택배노동자의 노동시간 구조를 보면 분류작업과 배송작업으로 나뉜다. 최근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분류작업이 43%를 차지한다. 두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택배노동자의 업무는 아니다. 현행법에 근거하면 택배노동자들의 업무는 배송이다. 그런데 분류작업도 시킨다. 물량이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분류작업을 택배노동자가 그냥 했다. 문제는 물량이 늘면서 분류도 늘었다. 분류작업 시간이 하루 노동시간인 8시간에 거의 근접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공짜노동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택배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우리는 배송전담이니 분류작업은 다른 사람이 하도록 하라”는 거다. 이제는 정상화하라는 요구로 전혀 문제가 될 게 아니다. 택배노동자는 배송 건별로 수수료를 받는다. 분류작업은 돈을 주는 작업이 아니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 배송만 하고, 그래서 하루 법정 노동시간에 준하는 배송노동을 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죽지 않기 위해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로 늘어난 물량에 명절까지, 택배 극성수기를 앞둔 상황에서 정부나 정계가 정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계속 죽는다. 택배노동자들은 다음주 분류작업 거부투쟁을 예고했다. 투쟁에 들어가면 고객들이 택배를 제때 못 받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신선식품이나 과일은 상할 수 있고, 택배사와 정부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택배사는 엄청나게 돈을 벌고 있다. 특히 CJ대한통운은 택배물량의 50%를 소화한다. 반면 중소 택배사는 물량이 많지 않다. 택배의 수수료를 현실화하거나, 중간관리자로 수수료를 떼어가는 대리점의 존치를 고민해 봐야 한다. 택배사가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중간 수수료가 빠져 나가는 것을 막으면 윈윈이 가능하다. 택배노동자를 쥐어짜는 중층적 하도급 구조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노동자 착취가 계속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노사민정·시민사회 긴급 논의기구 만들자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

▲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

힘들 때 가장 어려운 곳이 가장 아프다.

언택트시대, 포스트코로나를 맞아 택배물량이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택배노동자들은 유난히도 길었던 장마와 잦은 태풍으로 위험도 감수해야만 했다.

코로나19와 폭염·폭우 속에서, 고강도 노동때문인지, 안타깝게도 한 달에 한 명꼴로 과로사가 발생하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노동자들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이 71.3시간이고, 이 중 43%가 무급분류작업에서 발생한다. 무급분류작업이 택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 10일 국토교통부는 추석을 앞두고 택배물량 증가에 대비해 택배 종사자 보호조치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인력을 충원해 증가하는 배송물량을 정상적으로 처리하도록 조치하고, 택배기사의 작업량 조절을 요청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토부·고용노동부와 택배업계는 지난 16일 간담회를 열고 분류인력·차량배송 지원인력 등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택배노동자 당사자들과의 소통으로 추가대책이 필요한지 여부를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17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분류작업 인력투입 요구에 대해 택배사들이 여전히 묵묵부답이라는 이유로 21일부터 분류작업 거부를 예고했다. 4천여명의 택배노동자가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합리적인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대책 마련을 위해 노사민정·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긴급 논의기구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분류작업 인력충원을 통한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인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서 의정활동과 입법활동을 통해 택배노동자의 처우개선과 함께 택배회사와 택배노동자가 상생할 방안을 계속해서 모색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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