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요즘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면 꼭 하는 일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지역 언론의 사회면 기사를 검색하는 일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늘 이 시간만큼 불안한 마음을 가눌 수 없다. 기사 하나하나를 넘기면서 오늘도 누군가가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참담한 일을 당하진 않았을까 마음을 졸인다. 다행이다. 오늘 부산지역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없다.

하지만 이것 또한 무슨 위안이란 말인가. 매일 2~3명 이상의 노동자가 사고로 일터에서 목숨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 앞에서 찰나의 안도감은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비보에 또다시 무너진다.

노동건강연대가 집계한 지난 8월 기업살인 현황을 보면 8월 한 달 동안 발생한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81명이다. 안타깝게도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가 발생한 4월(94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부산지역에서도 한 달 동안 9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사망한 분들만 8명이다. 대부분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심지어 9건의 중대재해 중 언론에서 확인하지 못한 사망사고도 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부산운동본부 출범 다음날인 지난달 20일, 부산시 낙동강관리본부에서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하던 기간제 노동자가 차량을 이용해 일하던 중 차량통과높이 제한시설에 부딪혀서 추락했다.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사망했다. 지역언론에서도 보도하지 않은 이번 사망사고는 하루가 지난 후 다른 구역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제보를 통해서 알려지게 됐다.

노동자의 죽음과 중대재해에 임하는 고용노동부의 태도는 안일하기 그지없다.

지난달 28일 부산 연제구에서 건물 간판·스티커 제거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4미터 높이에서 추락해 숨졌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3일이 지난 뒤 사고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담당자에게 연락해 봤지만 사고 자체를 알지 못했다.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서는 지난달 25일 산업용 쓰레기 분리기계를 시운전하던 회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5명이 다쳤다. 사고 발생 당시 한 명은 의식불명(현재 의식을 찾아 수술함) 상태였고, 나머지 네 명 중 한 명은 심한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부산북부노동지청은 중대재해로 규정하지 않았다. 3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는 24시간 이내에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으로 출동해야 한다. 작업중지와 함께 현장보존과 사고발생 원인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하지만 부산지방노동청과 관할 지청은 언론보도로 확인된 사망사고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안일하게 대응하고 업무를 방기했다. 협소한 잣대를 들이대며 중대재해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하면서 업무상 사고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2017년 이후에도 매년 1천여명 이상의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로 끊임없이 죽고 있다.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했으나, 노동자의 죽음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진심으로 노동자의 죽음과 중대재해를 멈추고 싶다면, 아니 업무상 사고 사망자를 절반이라도 줄이고 싶다면, 이미 그 해답은 나와 있다.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서 확인하지 않았나.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만 제대로 했더라면, 매뉴얼대로 작업을 할 수 있었더라면, 위험과 안전업무의 외주화를 중단했다면, 노동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기업이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됐더라면, 자본의 이윤보다 노동자의 삶과 생명을 우선하는 사회였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제는 행동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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