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학에는 매년 14조원 넘는 정부 지원금이 투입된다. 그만큼 공공성 강화가 필요함에도 사학 비리와 전횡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사학은 사학 운영의 자율성을 내세우면서도 교육기관을 자신의 사유물로 취급했다. 부패사학재단은 내부 구성원에게 침묵을 강요하며, 사학의 공공성과 책무성 확보를 위한 노력은 철저히 외면했다. 사학 혁신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교수노조가 사학 현실과 사학 혁신 방안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박정원 교수노조 위원장

교수는 높은 연봉에다 고도의 자율성을 가진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비정년트랙 교수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현재 우리나라 사립대학에는 총1만1천여명에 달하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이 있다. 이들은 심각한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을 뿐더러, 승진과 보직기회, 연구비 배정 등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 2018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일반대 비정년트랙 교원의 평균임금은 약 3천400만원이며, 전문대 교원은 이보다 훨씬 적다. 취업이 될 때까지 교수노동력 가치형성 과정을 고려할 때, 엄청난 임금착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최소 2~3년에 한 번씩 새로운 고용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학내의 각종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배제된다. 총장선출에도 참여하지 못하며, 교수협의회에 가입할 수 없는 곳도 있다. 정년트랙교수들이 가입한 노조에서 배척당하기도 한다. 그 결과, 정규교수 내에서도 호봉제교수-연봉제교수-비정년트랙교수로 이어지는 계층화가 이뤄졌다.

대학의 기업화가 초래한 부패상

대학은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서비스 자본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립대학은 마치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처럼 행동하고 있다. 대학들은 잉여를 실현하기 위해 계약제로 고용하는 가변자본(비정년트랙교수·비정규직 교수·비정규직 직원·조교·근로학생)을 늘리고, 투입량을 매년 조절하고 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교수채용이 아니라 지출액을 줄이기 위한 고용관리에 불과하다. 비정규직과 비정년트랙교수들의 희생으로 사립대학들은 엄청난 적립금을 축적했는데, 현재 그 규모가 8조원을 넘는다. 특히 수도권 주요 사립대학은 수백억원씩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비정년트랙과 비정규직 교수(시간강사)에게 생존비 수준에도 미달하는 저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교육부의 방관과 조장

이런 비극적 사태의 근본 원인은 교육부의 방관과 조장에 있다. 교육부는 전임교원 확보율을 계산할 때 비정년교수를 포함시키도록 했고, 이에 고무된 사립대학들은 앞다퉈 비정년교수들을 채용했다. 준국립대인 서울대학교에도 산학협력교원·교육중심교원BK교원 같은 많은 비정년트랙교수들이 있을 정도이다.

교육부의 역주행은 계속된다. 2018년 교육부는 평가에서 일반대학 전임교원에게는 연봉 3천99만원, 전문대 전임교원은 2천470만원 이상 지급하면 점수를 깎지 않겠다는 임금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교육부가 납득할 수 없는 액수의 임금을 제시한 것이다.

2021년 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에는 전임교원 확보율이 주요 지표 중 하나로 포함돼 있다. 전임교원을 더 많이 확보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지금 상태라면 많은 사학이 비정년트랙교수를 대거 채용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노동조합으로 대응해야

대학 내 모든 교수들이 차별 없는 노동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가진 구성원들의 자세 변화가 중요하다. 비정년트랙교수와 비정규교수들의 희생 위에서 기득권을 누려 온 정년트랙교수들은 이제 동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나서야 한다.

아울러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 교수노조 활동을 강화하고, 직원노조·총학생회와 연대해 대학평의원회·개방이사추천위원회 같은 자치기구를 활성화하고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교섭하고 싸워야 한다.

교수들을 궁핍하게 만들고, 사학을 살찌우는 신자유주의 고등교육정책과도 싸워야 한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인간과 학문을 중시하는 선(善)한 고등교육정책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와 교섭하고 투쟁해야 한다. 전국 규모의 교수노조만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다.

비정년트랙교수들이 당면한 문제는 마음씨 좋은 도덕가가 대신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는다. 교수노동자들의 조직화만이 진정한 해결방법이다. 나아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싸우는 모든 산업과 지역의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차별 없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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