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간식에 속하는 음식 중 ‘마탕’ 혹은 ‘맛탕’이라 부르는 게 있다. 쓰는 사람마다 제각각인데 과연 어느 게 맞을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둘 다 표제어에 없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마탕’을 표제어로 삼아 다음과 같이 풀어 놓았다.

마탕(-糖) : 고구마나 당근 따위를 굵게 토막 내서 기름에 튀긴 다음 물엿이나 조청 등을 버무려 조린 음식.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자들은 왜 아무것도 표제어에 올리지 않았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이들이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질의응답 코너인 ‘온라인가나다’에 질문을 했더니, 아래와 같이 두 차례에 걸쳐 답변을 내놓았다.

“사전에서는 문의하신 단어의 쓰임새를 찾을 수가 없어, 표기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의미를 고려해 볼 때, 문의하신 단어는 ‘맛’과 ‘탕’의 형태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라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 누리집 로마자 표기에 ‘고구마맛탕(goguma-mattang)’과 같은 용례가 제시되어 있는 점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어휘 자료를 살펴보았는데, ‘맛탕’의 ‘탕’은 ‘당(糖)’에서 온 말로, 음이 달라진 한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맛탕’은 ‘고기, 생선, 채소 따위에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추어 끓인 음식’을 이르는 ‘탕’과는 의미상 관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첫 번째 답변은 궁색하다. ‘맛’과 ‘탕’의 형태가 결합해 만들어진 단어라고 판단된다고 하면서도 ‘사전에서는 단어의 쓰임새를 찾을 수가 없어’ 표기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엄연히 언중이 활발하게 쓰고 있는 말을 자신들이 올리지 않았으면서 딴소리를 하는 형국이다. 국어사전이란 편찬자들이 만든 말을 언중이 배워서 쓰도록 하는 게 아니라 언중이 쓰는 말을 편찬자가 찾아서 제 표기와 뜻에 맞도록 설명해 주는 게 존재 목적에 맞다. 그런 면에서 위 답변은 무책임하며, 차라리 정확한 어원을 밝히기 어려워 표제어로 올리지 않았다고 하는 게 나았다.

그렇다면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편찬자는 ‘마탕’과 ‘맛탕’ 중에서 왜 ‘마탕’을 표제어로 삼았을까? 국립국어원의 추론대로라면 ‘맛탕’이 어원에 가까울 텐데 말이다. 이 음식은 본래 ‘바쓰[拔絲]’라는 중국 음식을 본떠 만든 거라는 데 많은 사람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 바쓰가 언제 어떻게 한국으로 들어왔는지, 누가 어떤 이유로 ‘마탕/맛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이럴 때 국어학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게 ‘말뭉치’라고 번역하는 ‘코퍼스’다.

코퍼스(corpus) : <언어> 언어 연구를 위해 텍스트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모아 놓은 언어 자료. 매체, 시간, 공간, 주석 단계 등의 기준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말뭉치.

이 코퍼스를 사용해서 해당 낱말이 쓰이는 빈도를 확인해 보는 방법이 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코퍼스를 활발하게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특징 중 하나가, 하나의 낱말이 여러 개의 뜻을 지니고 있을 때 기본 의미가 아니라 언중이 많이 사용하는 뜻을 먼저 내세운다는 점이다. 가령 ‘무대’라는 낱말의 뜻풀이를 할 때 표준국어대사전이 기본 의미에 해당하는 ‘노래·춤·연극 따위를 하기 위헤 객석 정면에 만들어 놓은 단’이라는 뜻을 맨 앞에 배치했다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기본 의미에서 갈라져 나온 ‘재능이나 역량을 발휘하거나 나타내기 위해 활동하는 장소나 분야’라는 풀이가 먼저 나온다. 낱말의 실제 쓰임새를 더 중시하겠다는 편찬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마탕/맛탕’으로 돌아가 보자. 옛날 신문에서 두 낱말을 찾아보니 1962년에 이미 동아일보에 ‘마탕’이라는 표기가 보이고, 이후에도 간간이 같은 표기가 나타난다. 반면 ‘맛탕’은 1991년에 해태제과에서 ‘고구마맛탕’이라는 이름의 과자를 생산해서 판매한다는 광고를 내보냈으며, 그 이후 ‘맛탕’이라는 표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편찬자들이 ‘마탕’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짐작된다. 그렇다고 해서 ‘맛탕’이 틀렸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나중에 생긴 표기가 언중들의 호응을 더 많이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자들이 낱말을 대하는 자세에 적극성이 부족한 건 아닌지 돌아보기를 바란다.

박일환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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