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어느 모임 자리에서 한 지인이 질문을 던진다.

“올해가 전태일 50주기인데, 그런데 과연 전태일 정신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풀빵 정신이지, 바로 가장 작은 것을 나눌 수 있는 나눔 정신”이라는 대답이 이어졌다.

실제로 전태일50주기위원회에서는 풀빵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남긴 정신적인 유산 속에서 연대성 회복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본 것이다.

질문은 이어진다. “그럼 노회찬 정신은 무엇이지?”

사실 열사의 정신을 하나의 박제화한 단어로 나타낸다는 것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다. 정신은 시대와 상황 변화에 따라 늘 새롭게 해석된다. 또 그중에서도 무엇 하나가 가장 옳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50주기위원회에서 풀빵연대를 강조하는 것은 지금이 노동자계급 내부의 사회적 연대가 절실한 시기이기 때문이리라.

올해 노회찬재단 사업 기조를 이루는 노회찬 정신은 6411 정신이다.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투명노동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함께 비를 맞고자 했던 그의 정신이 지금 이 사회에 가장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태일을 전태일재단이 전유할 수 없듯이, 노회찬재단 역시 노회찬을 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전태일을 풀빵나눔이 아니라 저항정신의 상징으로 그릴 수 있듯이, 노회찬 역시 6411버스 연설이 아니라 엑스파일로 엮여 있는 거대권력에 맞선 당당함을 상징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시기에 우리에게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같이 아파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이다. 전태일의 마음의 고향은 평화시장의 나이 어린 동심이었고, 노회찬의 마음의 고향은 투명노동자들이었다. 2020년 전태일 정신과 노회찬 정신은 그렇게 연결된다. 노동운동이든 진보정치운동이든 그 정신을 품고 가면 좋겠다. 그리고 그 정신이 운동의 존재 이유가 됐으면 한다.

최근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세밀히 접근해 볼 겨를은 없었으나 혁신 이유와 방향에 대해 할 말이 있다. 혁신에도 방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집단은 첫 마음 또는 과거의 정신을 잃어버려 그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혁신을 해야 하는 반면, 또 어떤 집단은 낡은 것에 집착해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혁신해야 한다. 보수정당이 새로운 조류에 적응하기 위한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면, 노동운동이나 진보정당은 존재 이유를 찾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혁신이 필요한지 진단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면, 방향을 상실하거나 그저 그런 제도를 이리저리 짜깁기하는 데 그치고 만다. 혁신은 무엇보다도 조직의 사명을 분명히 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사명을 조직의 사업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조직의 목표와 사업계획을 사명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명은 조직의 존재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조직은 이러저러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은 유일하게 우리 조직밖에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명감을 조직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을 때 그 조직은 길게 성장할 수 있다. 전태일과 노회찬을 기억하는 조직이라면 그 사명 찾기를 전태일 정신과 노회찬 정신에서 시작하기를 바란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약한 자들의 연대를 실현하겠다는 정신이다.

혁신에 대해 또 한 가지 할 말이 있다. 이러저러한 혁신이 이야기되지만 결국 다다르게 되는 지점은 사람이다. 혁신은 기술로 이뤄지지 않는다. 혁신 역량이 없으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혁신은 이뤄지지 않는다. 혁신 역량은 제도와 문화로 구현할 수 있는데, 제도와 문화의 핵심에는 사람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기술과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혁신 역량은 사람의 지식·기술·능력일 터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혁신 역량은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 달려있다. 이 점에서도 전태일과 노회찬은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은 살아있는 기억이다. 재단에서 올해 실천하는 사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다. 덧붙여 이런 사업이 다른 조직의 사명과 사업에도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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